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
기획재정부에서 분리돼 이달 초 출범한 기획예산처가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 주요 4개국이 예산 지출을 늘리고 있다’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재명 정부의 기조에 맞춰 ‘확장 재정이 세계적 추세’라는 여론 형성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기획예산처가 제시한 사례는 각국의 특수 상황을 뺀 아전인수식 해석에 가깝다. 지금 주요국은 코로나 팬데믹 때 급증한 부채를 줄이는 재정 정상화 기조가 대세다.유럽연합은 재정 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강화했고, 독일은 신규 부채 발행을 GDP의 0.35%로 묶는 ‘부채 브레이크’를 가동하고 있다. 미국·독일의 국방 지출 확대는 대만 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초래된 안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특수한 사정이며, 중국의 재정 확대는 공산당 체제 안정을 위한 것이다. 수십 년 장기 침체를 겪은 일본이 궁여지책으로 펴는 재정 확대 정책을 우리가 따라 할 일은 아니다.
이들 국가들은 사실상 기축 통화국이다. 세계 주요국 중 화폐가치 하락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인 우리와 입장 자체가 다르다. 특히 우리는 합계출산율 0.7명대의 충격 속에 올해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가만히 있어도 연금·건강보험 등의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재정 구조다. 선심성 예산을 줄여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물려주지 않도록 재정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할 기획예산처가 벌써부터 정권 입맛에 맞춰 ‘돈 풀기 명분’을 만들려하고 있다.
지금 기획예산처 이혜훈 장관 후보자는 연일 제기되는 각종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돼 있다. 의혹 하나하나가 심각하고 악성이다. 국민 다수가 사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후보자의 행태 중에 기가 찬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돈 살포 정책을 그토록 비판하던 사람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갑자기 “적극 재정 구현을 마지막 소명으로 삼겠다”고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이 와중에 기획예산처가 뜬금없이 ‘돈 더 풀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이것은 이혜훈 후보자가 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구명 편지인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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