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2025년 1월 12일(현지시간) 양자면담하고 있다 /사진=재정경제부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의 한국 외환시장에 대한 구두 개입은 말 그대로 '이례적'이다. 다른 국가의 외환시장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고, 더욱이 그 주체가 미국 재무부 장관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이다. 미국 재무부는 1년에 2번 내놓는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을 발표할 정도로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다.
재정경제부는 인정하지 않지만, 베선트 장관의 구두 개입은 미국 재무부와 한국 외환당국의 '약속 대련'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외환시장 상황에 따라 연간 200억달러인 대미(對美) 투자의 시기와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맞물린 탓이다.
베선트 장관 발언의 출발점은 지난 12일(현지시간)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 진행한 한미 재무장관회의다. 구 부총리는 주요7개국(G7) 회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 재경부 국제경제관리관과 외화자금과장이 동석했던 만큼 일찌감치 환율 문제가 회의 테이블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 양국 장관은 최근 원화의 가파른 절하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공감했다고 한다. 베선트 장관은 이 사실을 한국시간으로 14일 밤 11시경 본인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개했다. 한국 외환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냈다. 시장은 베선트 장관의 구두 개입으로 받아들였다.
지난해 4월 한미일 재무장관이 공동선언문에서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의 절하가 과도하다는 문구를 넣어 사실상 구두 개입한 적이 있지만, 미국 재무부 장관이 이런 방식으로 구두 개입에 나선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베선트 장관 발언이 공개된 시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시장에서는 베선트 장관이 구 부총리와 지난 12일 만난 지 이틀 만에 이런 메시지가 나왔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와의 사전 교감 속에 나온 '조율된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재경부는 베선트 장관에게 별도의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최지영 재경부 국제경제관리관은 "미국 재무부가 대외적으로 메시지를 내는 데 조심스러운 곳이고, 베선트 장관도 SNS에 직접 올리는 것이어서 문안에 대해 신중해 지연된 것으로 안다"며 "그러다 미국 시간으로 밤이 됐고, 그때 내기 적절하지 않아 다음날 내자고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의 발언은 원화 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3500억달러(약 512조원)에 달하는 한국의 대미 투자 합의 이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미 투자 이행 과정에서 환율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상황은 양국 모두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는 것이다.
베선트 장관이 한미 양국의 무역·투자 협정과 관련해 "협정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돼야 한다"며 "한미간 협정은 양국의 경제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미국 산업 역량 부흥을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환율 불안이 투자 이행에 미칠 파급효과를 의식한 발언으로 분석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이 '병 주고 약 주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대미 투자가 원화 약세의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미국이 환율 안정 메시지를 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정책 역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축소를 통해 원화 약세 압력을 키운 요인으로 거론된다.
세종=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심재현 특파원 urme@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