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눈덮인 주택가. AP 연합뉴스 |
14일(현지시각) 미국과 덴마크·그린란드 대표단 회담이 소득 없이 끝난 가운데, 유럽의 나토(NATO) 회원국들이 그린란드에서 군사 훈련을 벌이기로 했다.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방어할 힘이 없으니 우리가 차지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르몽드와 독일 데페아(DPA) 통신에 따르면,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자치정부 재정조세부 장관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국 대표단과 그린란드 영유권 문제를 두고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부터 향후 며칠간 그린란드에 나토 병사들이 늘어날 것이다. 군용기와 군함도 늘어난다”고 밝혔다. 이어 “군사훈련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덴마크 국방부도 성명을 내어 “(훈련의) 목표는 극지 환경에서 작전 수행 능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유럽과 대서양 안보를 위한 나토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악틱 인듀런스 작전’(Arctic Endurance·북극의 인내)이라 이름 붙은 이 훈련에는 독일·프랑스·영국·덴마크 등 나토 내 유럽 회원국들 다수가 참여한다. 독일 국방부는 성명에서 “덴마크의 역내 안보 보장을 지원하기 위한 향후 군사 기여를 염두에 두고 (해당 지역의) 환경 조건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13명으로 구성된 정찰대를 15일 파견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저녁 엑스(X)에 “프랑스군 선발대가 이미 이동 중이다. 다른 병력도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혹한에서 훈련해온 육군 산악여단 소속 병력을 보낸다. 이외에도 노르웨이와 영국이 각각 2명, 1명의 장교를 보태고 스웨덴도 장교를 파견한다. 그린란드에서의 합동 훈련이 보통 수개월 전부터 준비되는 반면, 이번에는 발표가 임박해서야 결정됐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지난해 6월 덴마크 해군 프리깃함이 그린란드 수도 누크 앞바다를 초계 중인 모습. AFP 연합뉴스 |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홀로 지킬 수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에 유럽이 ‘행동으로’ 반박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우리가 (그린란드에) 가지 않으면 중국이 갈 것이고, 러시아도 갈 것”이라며 “나는 덴마크가 혼자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훈련과 별도로 유럽 정치권의 덴마크·그린란드에 대한 지지 표명도 이어진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이날 의회에 출석해 “(그린란드를 갖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는 매우 심각하며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덴마크·그린란드 당국과 프랑스는 완전한 연대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극우·친미 성향의 제1야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베네수엘라 위협을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이 당의 티노 크루팔라 공동대표는 전날 기자들에게 “(무력으로 땅을 뺏는) 서부개척 시대 방식은 거부해야 한다”며 “트럼프는 다른 나라에 간섭 않겠다는 핵심 선거 공약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다만 각국 병력이 훈련 이후에도 그린란드에 상시 주둔하는 것은 아니다. 파견 규모 역시 소수라고 유럽 언론들을 지적했다. 한겨울 그린란드 날씨가 혹독해 항공기 등 군사 장비가 손상될 수 있는 데다, 유럽이 대규모 무력시위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나치게 자극하고 싶어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르몽드는 “병력 파견은 대부분 소규모로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훈련은)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 주권을 지지하는 동시에, 유럽 국가들이 신속하게 (병력을) 조직해 이곳 안보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이려는 ‘전략적 신호’에 가깝다”고 짚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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