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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원의 도보여행] 신촌길(2)- 김대중, 이한열, 원두우와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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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원의 도보여행] 신촌길(2)- 김대중, 이한열, 원두우와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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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원 기자]
등록 문화유산 김대중 사저. /사진=윤광원 여행작가

등록 문화유산 김대중 사저. /사진=윤광원 여행작가


(더쎈뉴스 / The CEN News 윤광원 여행작가) 숲길 왼쪽에 '김대중 길' 입구가 있다.

그 골목을 90m 직진하면, 고(故)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자리한다. 골목길 중간에 '서울교회학생센터' 건물이 있고, 홍대 굿즈샵 '안서당'에는 극장판 주술회전(呪術會戰) 포스터가 붙었다.

김대중 사저(私邸)는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내외가 50여 년간 거주했던 곳이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178-1에 소재한,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문화 공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남 신안군 하의도(荷衣島) 후광리에서 태어나, 덕봉강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하의보통학교, 목포 북교초등학교, 목포 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다. 목포에서 해운회사와 신문사 등을 경영하다가 정계에 입문, 1960~1980년대 민주화운동(民主化運動)에 앞장섰다.

3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으나, 1997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와의 연합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50년 만의 첫 여야 정권교체였다.

대통령 재임 시기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국정지표로 삼아, 외환위기(外換危機)를 극복했다. 또 정보화, 문화개방, 성평등, 생산적 복지 등 창의적인 혁신정책으로 선진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 정책을 펼쳐, 2000년 6월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 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에 공헌한 공로로,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平和賞)을 수상했다. 2009년 8월 18일 향년 85세로 서거,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사저 대문에는 김대중, 이희호(李姬鎬) 두 개의 문패가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걸렸다.


김 전 대통령은 1963년 이곳에 터를 잡은 뒤 미국 망명, 영국 유학 시기 및 2년간의 일산 거주기를 빼고는, 2009년 타계할 때까지 줄곧 이곳 동교동 사저에서 지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 뜻을 같이한 동지들을 일컫는 동교동계(東橋洞系)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곳은 2025년 12월 16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이란 공식 이름으로, 국가등록 문화유산에 지정됐다.

국가유산청(國家遺産廳)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사저 건물의 2층 생활공간, 문패와 대문을 '필수 보존 요소'로 지정했다. 2층 생활공간은 서재, 침실 등 대통령의 생전 생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가옥은 유족이 매각, 현재 다른 사람 소유로 평소 굳게 대문이 잠겨있다. 문화유산도 됐으니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 개입, 김대중 기념관(記念館) 등으로 개방되면 좋겠다.

사저 옆으로 돌아가면, 김대중 도서관이 보인다.

이 도서관(圖書館)은 지금 연세대 재단 소유다. 공식 명칭은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김대중도서관'이다.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으로, 김 대통령이 연세대에 기증한 사료와 건물을 토대로 2003년 설립됐다. 현재 전시관과 사료관 등을 홈페이지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그 앞 공터는 마포구에서 조성한 '김대중 평화공원(平和公園)'이다.

골목 건너편에는 교과서 등으로 잘 알려진 출판사 지학사가 보인다. 외벽 표어는 "수업을 새롭게, 배움을 즐겁게"다.

신촌로에서 우회전, 연세대 방향으로 간다.

이 동네 창천동(滄川洞)의 동명은 안산(무악산) 서남쪽에서 시작, 이곳 중심부를 지나 광흥창(廣興倉) 앞을 거쳐 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인 창내, 즉 창천의 이름을 따서 붙인 데서 유래됐다.

창천동 삼거리를 지나, 홍익 요가 주차장에는 시화(詩畫)가 가득하다.

'네이버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이한열 기념관'을 찾아간다. '에피소드 신촌캠퍼스 98세대'를 끼고 돌아, 다음다음 골목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곧 이한열 기념관이 나타난다.

이한열 기념관. /사진=윤광원 여행작가

이한열 기념관. /사진=윤광원 여행작가


이한열(李韓烈) 열사는 전남 화순 출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당시 동아리 '만화사랑'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반독재투쟁에 가담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拷問致死)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6월 9일 열린 결의대회에서,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요절했다.

이 열사의 죽음은 6월 항쟁(抗爭)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됐다.

기념관은 열사의 유품과 6월 항쟁의 기록을 보존하고, 민주주의 역사를 교육하는 사립박물관이다. 열사의 어머니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賠償金), 시민들의 성금으로 2004년 건립됐다. 1층은 연세 민주동문회, 2층은 (사)이한열기념사업회의 사무실이고 3층과 4층이 전시실이다.

다시 신촌로로 올라와 조금 더 가면, 신촌역이다. 3번 출구에서 연세로를 따라간다.

연세로 초입은 '문학(文學)의 거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우리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시대정신과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신촌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자, 서대문구(西大門區)가 조성했다.

윤동주, 최인호, 김남조, 이어령, 정현종, 이근배, 김승옥, 유안진, 조정래, 강은교, 박범신, 정호승, 도종환, 곽재구 선생들이 대상 작가다.

길바닥에, 작가의 두 손바닥 도장과 어록을 새긴 동판들이 쭉 이어진다.

이어령(李御寧) 선생은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로 바뀐다. 무릎을 깨뜨려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정현종 작가는 '섬'이란 작품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썼다.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水仙花)에게'를 통해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노래했다.

버스정류장 명칭도 문학의 거리다. 다음 정류장은 '명물 거리'.

성탄절(聖誕節)을 앞둔 연세로에는 'MERRY CHRISTMAS'라는 글귀와 산타 및 사슴 썰매가 달린 조형물 아래로 자동차들이 달리고, '명물길' 입구에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다.

창천교회 앞을 지나면, 경의·중앙선 철길 밑을 통과하는 굴다리가 나온다.

그 입구에 이정순 열사 안내판이 보인다. 이 열사(烈士)는 전남 순천에서 독립운동가 아버지와 여순 항쟁 피해자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고된 노동자 생활 중에도 독실한 신앙과 독학(獨學), 틈틈이 시와 글로 한반도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1991년 4월 백골단(白骨團)에 의한 강경대 열사 폭행 사망 이후, 5월 18일 강 열사의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연세대 정문 앞 이 철교에서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공안 통치 종식, 노태우 퇴진, 백골단 해체"를 외치며 분신(焚身) 후 투신 자결했다고 한다.

광주 시내 망월동 소재 민족 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됐다.

안내판 뒷면에는 이 열사의 유고(遺稿) 시집 《내 빛은 어느 빛이련가》 중에서 〈듣는 이 없어 몇 자 적어본다〉가 새겨졌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윤광원 여행작가는] 한양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30년가량 경제기자로 일해 왔다. 특히 금융과 정부정책 관련 기사를 많이 썼다. 그러면서도 많은 책을 읽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걷기와 등산을 열심히 했다. 특히 8년 넘게 트래킹모임 '길사랑'을 이끌면서 사람들과 산과 들을 무수히 걸었다. 매주 어딘가를 갔고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연속으로 나간 적도 많다. 짬이 나면 주중에도 다니곤 한다. 이 글은 그 결과물이다.

저서로는 경제논술 전문서인 《깐깐 경제 맛깔 논술》과 해방 이후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역사를 야사를 중심으로 정리한 《대한민국 머니 임팩트》가 있다. 또 도보여행 작가로 쓴 《배싸메무초 걷기 100선》과 《산 따라 강 따라 역사 따라 걷는 수도권 도보여행 50선》 등 도 있다.

(더쎈뉴스 / The CEN News) 윤광원 여행작가. gwyoun17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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