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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인공지능과 기본소득, 일과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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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인공지능과 기본소득, 일과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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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보조 기술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규칙 자체를 재편하는 축으로 자리 잡았다. 다수의 직무에서 인간은 AI와 경쟁하거나 협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더 이상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 기준 자체를 다시 묻는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노동시장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대적으로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와 공공부문·대기업 중심의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문화가 강하다. 통계청 '202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청년층 선호 직장은 대기업(28.7%), 공기업(18.6%), 국가기관(15.8%) 순으로 나타났다. 불확실성이 커진 경제 환경 속에서 청년들이 고용 안정성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안정 선호가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AI가 빠르게 대체하거나 재편하는 영역이 한국에서 고용 비중이 높은 중간 숙련 사무·관리 직무라는 점에서, 직무 이동과 전환이 지연될수록 충격은 누적된다. 해당 업무가 자동화되더라도 인력 구조가 즉각 조정되지 않으면 생산성은 정체되고 신규 채용은 축소돼 외형상 고용 안정은 유지되지만, 내부적으로는 과잉 인력과 직무 공백이 동시에 발생하며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

인구 구조 역시 이러한 누적 위험을 키운다.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중장년층은 기존 지위를 유지하려는 유인이 강해 직무 전환 참여가 낮지만 청년층은 안정적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을 조기에 경험하며, AI와의 경쟁이 본격화하기 이전부터 높은 진입 장벽을 체감한다. 이는 세대 간 갈등과 사회적 이동성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미국의 경우 AI로 인한 충격이 더 빠르게 드러나지만, 조정도 신속하다. 직무 이동성이 높고 성과 중심 채용 문화가 정착된 미국에서는 기술 변화가 새로운 직무 실험으로 이어진다.

결국 AI 확산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불안정해진 계층을 완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적 소득 보장 제도는 전환기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하나의 대안이다.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실직자가 단기 생계 압박 때문에 저생산성 일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재교육과 직무 전환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특히 안정적 직업 선호가 강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제도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논의되는 로봇세도 자동화가 가져온 효율의 이면을 사회 전체가 분담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기술 발전과 분배 정의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동시에 미래 기본소득 도입의 중요한 전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보편적 도입은 인간의 삶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동반한다. 소득이 노동과 분리될 때, 일은 생계 수단이 아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사회는 개인에게 어떤 기여를 기대하는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노동 의욕 저하나 세대 간 부담 논쟁, 재정 지속 가능성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기본소득은 기술 진보의 해법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인간의 행복 추구 및 사회적 가치 체계와 충돌할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AI는 이제 단순 일자리 대체가 아닌, 일의 내용과 가치 그리고 사회가 노동을 통해 무엇을 분배하고 인정할 것인지를 다시 정의하는 기술이다. 한국의 안정 선호 문화와 새로운 제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단기적 안정보다 더 큰 중장기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화를 미루는 안정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변화를 관리하는 신중한 선택이다.
김규일 美 미시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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