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페드로의 로스앤젤레스 항구에 중국 선적 컨테이너들이 놓여 있다. 산페드로/로이터 연합뉴스 |
트럼프는 실행했고, 세계는 경악했다. 지난해 4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전 세계는 ‘관세맨’ 도널드 트럼프의 오랜 꿈이 현실에 ‘해방’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날 이후 발표된 관세 정책만 약 650개에 달한다고 알려져있다. 한때 기록했던 ‘대중국 관세 145%’는 ‘트럼프 관세’의 충격과 공포를 상징한다. 9개월여가 지난 지금 연방 대법원은 대표적인 ‘트럼프 관세’인 상호관세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 판결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전세계를 상대로 한 전무후무한 경제 실험, 미국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나.
‘무역적자 최저’ 자화자찬, 사재기가 만든 신기루
“무역적자는 2020년 중반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며, 지난해 대비 35% 이상 감소했다.”(백악관, 지난해 12월 11일)
무역적자 및 재정적자 축소는 제조업 육성과 함께 트럼프 관세의 핵심 명분 중 하나였다. 관세는 수입을 줄이고, 국가 수입은 늘리므로 두 적자 모두 줄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현실은 간단치 않았다.
우선 관세 세입이 많지 않았다. 2025 회계연도(2024년 10월 1일~2025년 9월 30일) 미국은 1950억 달러(약 282조원) 관세를 징수했다. 전년도보다 1180억 달러, 153%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1조 8000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 재정적자와 비교하면 약 11% 수준에 불과하다. 관세수입에도 불구하고 연방 재정적자는 80억 달러(0.44%) 줄어드는 데 그쳤다.
무역적자는 오히려 증가했다. 미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누적 무역 적자는 전년 동기 대비 1126억 달러(약 163조원) 늘었다. 2020년 이후 무역적자가 가장 적은 수준이라는 백악관의 주장은 ‘2025년 9월’의 데이터를 마치 전체 데이터인 것처럼 왜곡한 설명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분석한 논문을 최근 발표한 이탈리아 국립 우르비노대 경제학부 주세페 트라발리니 교수와 알레산드로 벨로키 연구자는 한겨레에 “1년이 지났음에도 관세가 무역 적자를 지속적으로 줄였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여전히 없다. 9월 한 달만 떼어놓고 보면 적자 폭이 줄어들어서 상황이 나아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1월부터 9월까지 전체를 합쳐서 전년동기와 비교해 보면, 오히려 적자가 17.2%나 더 늘었다”며 “한 달 반짝 성적이 좋았다가 일 년 전체 성적은 나빠지는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결과다. 관세가 오르기 전에 물건을 미리 사두는 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경제가 실제로 좋아진 게 아니라 수입업자들이 머리를 써서 잠깐 수치가 바뀐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인디애나주 볼스테이트대 경제학 석좌교수이자 대학 부설 경제연구소(CBER) 소장인 마이클 힉스도 한겨레에 “미국에서 제조업 집약도가 가장 높은 인디애나주의 경우, 기업들이 지난해 3월부터 6월 사이에 5~6개월 치에 달하는 추가 물량을 수입했다. 이러한 전례 없는 수입 급증은 공장들이 더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취한 자구책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8일 공개된 지난해 10월 무역적자는 294억 달러로 16년 만에 가장 작은 수준을 기록했다. 수입이 급감한 전달(9월)보다 수입액이 110억 달러나 더 줄어든 것이 크게 작용했다.
마진축소와 재고로 버틴 1년...올해가 진짜 고비
지난해 11월까지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7%로 2024년 말 수준을 유지했다. 백악관은 관세 최대 부작용으로 꼽혔던 물가 우려를 잠재웠다는 증거로 이 지표를 내세운다.
물가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첫번째 이유는 관세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타 고피나스 하버드대 교수 등은 최근 미국 관세 정책의 ‘법정 관세율’과 ‘실효 관세율’ 간 괴리를 분석한 논문에서 지난해 9월 말 기준 미국의 법정 관세율이 27.4%까지 치솟았지만 각종 면제와 집행 지연 등으로 실제 적용된 실효 관세율은 14.1%에 그쳤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실효 관세율이 높지 않았던 건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예외를 넓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커피, 바나나 등 민감 품목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면제 조치는 실효 관세율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의 원산지 요건을 충족한 캐나다 및 멕시코산 수입품은 여전히 관세를 면제받았는데, 이에 따라 지난해 이 협정 활용률이 전년도 50% 미만에서 90%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해당 조치는 실효세율을 약 2%포인트 하락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관세 발표 당시 이미 해상 운송 중이던 화물에 대해선 이전 세율을 적용해주는 ‘해상 운송 면제’ 조치도 초기 실효 관세율을 낮게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트럼프 관세’가 없었다면 물가는 더 낮았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하버드대 알베르토 카발로 교수는 논문에서 지난해 관세 확대 발표 이후 수입품 가격은 추세 대비 5.4%, 국내 생산 제품은 3% 상승하며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를 약 0.7%포인트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만약 관세가 없었다면 연간 물가상승률은 연준 목표치에 근접한 2.2% 수준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올엔 이마저도 위험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는 관세를 외국 기업이 낸다고 주장했으나, 기타 고피나스 하버드대 교수 등은 논문에서 ‘관세 전가율이 94%’라고 분석했다. 관세가 100일 때 미국 수입업자가 94를 부담했다는 뜻이다. 늘어난 (관세) 부담 중 소비자 가격에 반영된 비율은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55%에 불과하다. 나머지 45%는 기업들이 마진을 깎거나 기존 재고를 활용하는 식으로 흡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기존 재고가 소진되는 올해 이 비율이 70% 이상으로 급등할 수 있고, 이 경우 인플레이션 지수는 최대 0.6%포인트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 투박한 관세가 무너뜨린 미국의 신뢰
‘트럼프 관세’의 또다른 핵심 이유는 ‘제조업 육성’이다. 하지만 제조업은 트럼프 관세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미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미 제조업 일자리는 약 5만 9000개가 사라졌다. 기업들의 채용 의사를 나타내는 구인 규모도 7만 6000개 급감했다. 이에 대해 미국 싱크탱크 오알에크(ORF) 아메리카의 마르타 벵고아 객원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제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건 관세가 오히려 팬데믹 이후 첫 '제조업 고용 한파'를 불러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며 “관세로 인한 중간재 비용 상승 때문에 미 제조업 생산성 성장률도 연평균 0.5%에 그쳐, 역사적 평균(2.1%)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미시간대 경제학·공공정책학 교수 저스틴 울퍼스는 한겨레에 “제조업 일자리가 꾸준히 늘어나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데이터상으로는 일자리가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불안정한 모습만 반복되고 있다”며 “제조 기업들은 관세 때문에 재료값이 올라 수익이 줄었고, 결국 사람 뽑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힉스 교수도 한겨레에 “지난해 초 미국 경제지표는 아주 좋았다. 상반기까지 관세와 무관한 부문의 전반적인 국내총생산은 강세를 유지했다. 이후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이 기업의 의사결정을 매우 어렵게 만들어 국내외 투자를 감소시켰고, 결국 2024년의 강력했던 제조업 투자는 지난해 거의 중단됐다”고 말했다.
관세가 각 분야에 미친 부정적 효과는 올해 더 뚜렷해질 거로 보인다. 미국 컨테이너 물동량을 추적·분석하는 보고서 ‘맥카운 리포트(The McCown Report)’를 발간하는 존 디(D.) 맥카운은 한겨레에 “컨테이너 해운 산업에 종사해 온 수십 년 이래 올해 미국의 수입 물동량이 최악을 기록할 것”이라며 “수입량이 급감하면 내수 소비 위축으로 인해 성장이 크게 둔화되고, 반대로 물동량이 일정 수준 유지된다면 관세 전가로 인해 물가가 치솟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결국 ‘성장 둔화’와 ‘물가 인상’ 중 어느 쪽으로 더 쏠리냐의 문제일 뿐, 미국 경제는 이 둘이 조합된 고통스러운 구간 어딘가를 지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신뢰 상실’이라는 장기적 피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힉스 교수는 한겨레에 “트럼프 행정부의 기이한 행보는 전 세계 기업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에 독약을 뿌린 것과 같다. 미국과 거래하는 것은 위험하고 불확실하며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가 됐다.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전 세계 모든 기업이 대안을 찾고 있다”며 “단기간 내 해결도 어렵다. 무역을 위한 신뢰는 수십 년에 걸쳐 수천만 명의 소비자와 생산자가 쌓아가는 것이다.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을 재확인시키는 데 수세대가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울퍼스 교수도 한겨레에 “관세는 투박한 도구다. 물건값을 올리는 데는 아주 효과적이지만, 목표를 정확히 타격해서 경제를 살려내는 능력은 꽝이다”라며 “피해는 즉각적이고 광범위하게 나타난 반면, 이득은 아주 좁고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