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 특허 침해 경고·소송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램리서치 R&D 센터./램리서치 |
글로벌 4대 반도체 장비기업 중 한 곳인 미국 램리서치가 최근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특허 침해 경고장을 보내고, 무더기 소송을 이어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이 반도체 장비 국산화에 성공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판로를 확대하는 중요한 시점에 램리서치 소송에 휘말려 피해를 입고 있다”고 우려한다.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실이 지식재산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램리서치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국내 기업 상대로 총 12건의 특허 소송을 냈다. 그중 9건은 램리서치가 경기도 용인시에 R&D(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한 2022년 이후에 제기됐다.
◇줄소송에 신음하는 중견·중소기업들
램리서치가 한국에서 등록한 특허 건수는 2020년 68건에서 2025년 344건으로 크게 늘었다. 특허법은 국내에서 특허 등록이 되어 있는 기술에 대해서만 소송을 걸 수 있게 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는 램리서치가 앞으로 무더기 소송을 하기 위해 한국 특허 등록을 늘린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반도체 장비 부품 업체인 CMTX는 지난달 30일 램리서치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 무효 심판에서 무효 심결을 받아냈다. 앞서 이 업체는 2024년 램리서치에 특허 소송을 당했고, 지난해 7월 1심에서 특허 침해 사실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램리서치를 상대로 특허 무효 심판을 청구해 이긴 것이다.
특허 소송의 쟁점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웨이퍼를 둘러싸며 손상을 줄여주고, 고주파 전류 흐름을 좌우하는 링 모양의 구조물이었다. 램리서치는 특허 무효 심결 후에도 항소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CMTX 관계자는 “기술 도용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수년째 법정 공방이 이어지며 기술 개발과 판매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램리서치는 또 다른 소부장 업체 PSK가 개발한 베벨 에처(웨이퍼 가장자리만 골라 식각·세정하는 장비)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한 소송에서도 졌다. 해당 소송과 관련된 특허 2건에 대해 특허 무효 판결을 받았다. 지식재산정보 검색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램리서치의 특허 무효로 결정된 건수는 지난 한 해에만 6건에 달한다.
◇“국산 기술 보호할 정책 시급”
이처럼 램리서치에 유리하지 않은 판결이 나오지 않아도 소송을 이어가자 업계에서는 ‘이기려고 소송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범위하게 소송을 제기해 일부라도 승소하면 배상을 받고, 지더라도 소송이 진행되는 수년 동안은 후발 주자들의 발을 묶어놓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램리서치는 기술 개발 및 매출 보전의 시간을 벌 수 있다. 램리서치 측은 “특허의 유효성과 ‘모방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며 “특허 침해 여부는 특허심판원이 아닌 법원에서 결정될 것이며, 소송은 여전히 계류 중”이라고 했다.
램리서치 소송으로 피해를 보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정부 차원의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램리서치가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내세워 경고장을 보내는 단계에서부터 중견·중소기업은 커다란 압박을 받는다”며 “고충을 호소할 곳이 없다”고 했다.
지식재산처는 특허 분쟁에 휘말린 국내 기업들을 위해 개별 기업당 연간 최대 2억원 규모의 법률 자문 및 대응 전략 수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램리서치에 피소된 기업 중 5곳이 해당 자문을 받았다. 하지만 램리서치처럼 대형 로펌을 내세워 소송을 걸면 법률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중견·중소기업이 맞서는 데 한계가 있다.
구자근 의원은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은 우리 중소·중견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정부는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되는 것을 방지하고,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오로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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