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
빨래 건조대를 샀다. 아니다. 자전거를 샀다. 실내 자전거다. 이걸 샀다고 하니 친구가 말했다. “곧 훌륭한 빨래 건조대가 되겠군.” 훌륭한 건조대가 되기도 힘들다. 내가 산 자전거는 좁은 공간에서 쓸 수 있게 만든 제품이다. 사각형 본체에 안장과 바퀴만 달려 있다. 수건 한 장 널면 끝이다.
새해가 오면 항상 뭘 산다. 몇 년 전에는 스마트 체중계를 샀다. 체지방, 근육량 등 다양한 신체 정보를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한 기계다. 블루투스로 스마트폰 앱과 연동해 건강도 관리해 준다. 앱은 쓰지 않은 지 오래됐다. 그걸로 하는 건 체중 측정뿐이다. 요즘 기계는 다 스마트하다. 폰도 스마트하고 체중계도 스마트하다. 내가 스마트하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여러분도 새해가 오면 항상 뭘 산다. 많은 독자는 다이어리를 샀을 것이다. 나름 열심히 기록하며 살아보겠다고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용 스티커도 샀을 것이다. 여러분은 작년에 산 다이어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다이어리는 3월쯤 기능을 멈춘다. 우리의 새해 결심은 ‘교토의정서’의 적이다.
내 거실은 새해 결심의 노르망디 해변이다. 허벅지에 끼우고 사용하는 근력 기구는 소파 옆에 널브러진 채 신음 중이다. 눕기만 해도 척추를 잡아준다는 자세 교정기는 거실 장 아래 사망한 지 오래다. 올해는 꼭 읽겠다고 다짐하며 산 고전은 거실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는 죽는 날까지 상륙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박스에서 꺼내지 않았다. 박스 위에는 빨래가 널려 있다. 수건을 세 장이나 널 수 있다. “다음 달이면 반값에 당근마켓에 올라와요”라는 소리를 들으니 박스 풀 의욕도 사라졌다. 새해 결심용 물건은 2월에 사야 한다는 교훈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도 박스를 보고 있으면 혈당 스파이크가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체지방도 줄어드는 느낌이다. 역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원효대사는 이 글을 싫어할 것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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