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제초제 ‘라운드업’ 신화 무너지나
“유해하지 않다” 핵심 근거된 논문, 연구 윤리 문제로 철회
“유해하지 않다” 핵심 근거된 논문, 연구 윤리 문제로 철회
몬산토는 경영계에서‘변신의 귀재’로 벤치마킹 대상이다. 한때 미국 5대 종합화학기업이었지만, 오일쇼크 이후 농업생명과학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면서 화학 부문은 줄여나갔다. 사진은 몬산토가 개발한 GMO 옥수수, 면화, 토마토(왼쪽 위부터 차례로)와 GMO 옥수수 밭(오른쪽). |
1901년 10월, 존 프랜시스 퀴니가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공장 부지를 구했다. 제약사 머크에서 30년간 일한 그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화학 산업에 뛰어들 계획이었다. 머크 사장은 “기존 고객이 오해할 수 있으니 퀴니라는 이름을 새 회사에 쓰지 마라”고 했다. 퀴니는 스페인계 귀족 가문 출신 부인의 성을 쓰기로 했다. 부인 이름은 올가 멘데스 몬산토. 새 회사의 첫 사업은 코카콜라에 사카린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몬산토는 세계 대전을 거치며 화학·전자 산업의 최전선을 이끄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폴리우레탄, 발광 다이오드(LED), 경기장용 인공 잔디를 전 세계로 수출했다.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 살충제 DDT,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폴리염화바이페닐(PCB) 같은 논란의 화학물질도 가장 많이 생산했다. 몬산토 별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미움받는 기업’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
1970년 몬산토 연구원 존 프란츠의 발견은 글로벌 농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프란츠는 금속 세정제 글리포세이트를 식물의 잎에 뿌리면 1~2주 만에 뿌리까지 말라 죽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글리포세이트가 식물의 아미노산을 만드는 효소 EPSPs를 마비시키기 때문이었다. 몬산토는 글리포세이트가 흙에 닿으면 바로 분해될 뿐만 아니라 사람은 체내에서 EPSPs를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해하다고 했다. 1974년 몬산토는 글리포세이트 제초제 ‘라운드업’을 출시하면서 “소금보다 안전하다”고 홍보했다. 글로벌 1등 제초제의 탄생이었다.
‘모든 식물을 죽이는’ 라운드업의 대항마도 만들었다. 1996년 박테리아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식물에 넣으면서 라운드업에 죽지 않는 유전자변형작물(GMO) 씨앗 ‘라운드업 레디’를 출시했다. 무적의 제초제와 이를 견디는 씨앗의 조합은 몬산토를 세계 최대 종자 기업으로 만들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콩의 95%, 옥수수의 92%가 라운드업 레디 종자이다.
EU반독점 규제당국의 심층조사에 합병 제동이 걸린 바이엘과 몬산토 |
2018년 바이엘이 몬산토를 인수했다. 이 660억달러(약 96조원)짜리 거래가 ‘역사상 가장 비싼 실수’로 재평가되고 있다. 라운드업의 추악한 이면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엘은 인수 직후부터 라운드업 사용으로 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렸다는 피해자들과 소송 수만 건을 진행하고 있다. 바이엘은 여러 차례 패소했고 배상금은 건당 수천억~수조 원에 이른다. 법원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부착하지 않은 책임을 물었다. 라운드업이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암 유발은 물론 성호르몬 체계를 교란하고 유산·조산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국제암연구소는 2015년 글리포세이트를 직접 발암 물질(그룹1) 바로 아래인 그룹2A로 분류했다. 꿀벌이 사라지는 꿀벌 붕괴 현상(CCD)의 원인이 라운드업이라는 연구도 있다. 안전의 상징이었던 라운드업이 실제로는 죽음의 제초제였다는 말까지 나온다.
바이엘은 법적 책임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규제 권한을 가진 미 환경보호청(EPA)이 글리포세이트를 발암 물질로 분류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가 임의로 발암 경고 문구를 넣는 것은 위법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글리포세이트가 안전하다는 EPA의 기존 판단도 의심받고 있다. 지난달 국제 학술지 ‘규제 독성학 및 약리학’은 뉴욕대 연구팀의 2000년 논문을 25년 만에 철회했다. 편집장은 “심각한 윤리적 우려가 있다”고 했다.
글리포세이트가 암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이 논문은 1300회 이상 인용된 기념비적 논문이자 EPA가 글리포세이트가 무해하다고 판단한 핵심 근거가 됐다. 바이엘이 법정에서 가장 자주 사용한 증거이기도 했다.
문제는 논문이 몬산토 입맛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논문 저자들은 몬산토에서 돈을 받았고, 몬산토 직원들이 논문 기획부터 데이터 수집, 작성을 주도했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 논문 철회로 ‘과학적 무결성(無缺性)’이라는 바이엘의 가장 큰 방패가 사라졌다. 50년간 농업을 지배한 라운드업 신화는 혁신으로 시작됐지만 기만으로 얼룩졌고 이제 진실의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다. 남은 소송이나 글리포세이트 유해성 논란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기업이 마케팅과 책임 회피를 위해 과학을 조작한 대가는 결국 사회 전체가 치르고 있다. 글리포세이트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초제 성분이다.
[박건형 콘텐츠앤AI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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