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Midjourney |
집안일은 귀찮다.
집에서 요리를 시작할 때는 음식을 배달하지 않고 부지런히 차려 먹는 나를 칭찬한다. 그러나 식사 후엔 몸이 무겁다. 싱크대에 쌓인 프라이팬과 그릇을 외면해 본다. 결국엔 ‘얼른 마치고 쉬어야지’ 하면서 겨우 설거지, 빨래, 청소, 정리 등을 서두른다.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임에도, 집안일은 ‘시간을 빼앗는 부차적인 일’이란 인식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며 나를 다독이는 게 고작이다.
본업에서도 귀찮은 일은 계속 발생한다.
나는 이제 프리랜서 목수다. 개인 사업자로 등록했다. 그런데 힘찬 망치질은 시작도 못 했다. 며칠 동안 나는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고작 네이버 메일 계정 하나를 만들기 위해 통신사 가입 증명원을 제출해야 했고, 사업자용 인증서를 발급받으려고 보안 프로그램과 싸워야 했다. ‘새로 고침’을 누르고 기다리는 시간이 쌓여갔다. 혈압은 계속 올랐지만,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다’ 생각하며 나를 다독였다. 홈택스 메인 화면에 펼쳐진 수많은 메뉴는 세무사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했지만, 세무사는 비싸고 나는 저렴하다. 인터넷과 AI의 도움을 받아 며칠간 사투 끝에 겨우 가구를 판매할 자격을 얻었다.
일을 했는데, 애매한 기분이다.
새로 고침을 누를 때마다 당장 시작하지 못한 작업이 떠올랐다.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목수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보조 업무의 가치를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실무는 그것을 완료하지 않으면 본업을 시작할 수 없으므로 ‘보조’라 부를 수도 없는데도 그랬다. 새로 고쳐지지 않는 화면을 앞에 두고, 비로소 ‘일이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주변 노동’이라 불리는 일들이 있다.
돌봄과 가사처럼 꼭 필요한 일임에도 노동의 가치를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이다. 나는 모든 노동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 왔고, 믿어 왔음에도 정작 나의 일들은 ‘본업과 본업 아닌 것’을 구분 짓고 주변화했다. 나 역시 노동의 가치를 결과로만 판단하고,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무시한 셈이다.
노동자의 하루는 늘 눈에 보이는 성과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만들지 못했지만, 반드시 해야 했던 일들로 가득 채워진다. 나는 이제 그런 하루도 보람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주변으로 밀려난 노동을 중심으로 가져오는 일, 보이지 않던 노동에 이름을 붙이는 일. 써 놓고 보니 정치가 해야 할 일 같지만, 내 삶이 먼저 바르게 다스려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류호정 목수, 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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