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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은 긴급체포 하더니, 김경은 ‘임의동행’… 경찰의 고무줄 수사

조선일보 김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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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은 긴급체포 하더니, 김경은 ‘임의동행’… 경찰의 고무줄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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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비판 따라 ‘집중 수사’
사안마다 수사 잣대 들쑥날쑥
경찰은 “억울한 측면 있어”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에서 귀국한 김경 서울시의원. /뉴스1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에서 귀국한 김경 서울시의원. /뉴스1


공천 헌금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김경 서울시의원이 11일 귀국한 가운데, 경찰의 ‘봐주기 수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조계에선 “경찰이 사안에 따라 잣대를 달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 발언 하루 만에 집중 수사… 여권 의혹은 늑장 대응

최근 경찰의 수사 속도는 사안의 성격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지난 7일 경찰은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하는 등의 혐의를 받는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김병헌 대표 피고발 건을 서울 서초경찰서로 병합해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기존 경남 양산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던 사건 등을 한데 모아 집중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전날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김 대표의 행위를 “얼빠진 사자명예훼손”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지 하루 만에 이뤄진 조치다.

지난 6일 이재명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글. 평화의 소녀상 훼손 논란에 휩싸인 시민단체를 겨냥해 "얼빠진 사자명예훼손"이라고 비판했다. /X 캡처

지난 6일 이재명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글. 평화의 소녀상 훼손 논란에 휩싸인 시민단체를 겨냥해 "얼빠진 사자명예훼손"이라고 비판했다. /X 캡처


반면 김병기·강선우 의원 의혹에 대한 수사는 ‘늑장 대응’ 논란을 낳았다. 김 의원의 전직 보좌진이 작년 11월 이들의 공천 뒷돈을 폭로하는 탄원서를 경찰에 냈음에도 사건 배당조차 되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달 관련 고발이 쏟아지고 사건 정황이 담긴 두 의원의 녹취록까지 공개된 뒤인 31일 사건을 병합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를 공천 헌금 의혹 집중 수사 관서로 배정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5일이 지난 뒤였다. 그 사이 의혹의 ‘키맨’인 김 시의원은 자녀를 만난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경찰은 김 시의원 귀국 전까지 강제 수사 없이 고발인·참고인 소환 등 기초 조사만 진행했다. 대통령의 관심 사안에는 즉각 반응하면서도 여권 주요 인사들의 비위 의혹에는 수사 진척이 더뎠다는 지적이 나왔다.

◇‘도피성 출국’ 김경 임의동행, “출석 일정 조율” 이진숙 긴급 체포

사안마다 피의자 신병 확보가 다른 강도로 이뤄지기도 했다. 김 시의원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텔레그램 계정을 두 차례 탈퇴·재가입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6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가전 전시회 CES에 참석한 모습도 포착됐다. 정작 출국 사유였던 ‘자녀와의 만남’은 없었다. 그러나 경찰은 “김 시의원이 귀국 일정을 통보하는 등 수사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11일 귀국한 김 시의원을 임의동행 방식으로 조사했다. 그 덕에 김 시의원은 귀국 직후 변호사를 대동해 경찰의 자택 압수 수색을 참관했고, 3시간 30분가량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일각에선 작년 10월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긴급 체포됐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사례와 대비된다는 말이 나온다. 이 전 위원장은 직무 정지 상태이던 같은 해 9월 유튜브 방송에서 “좌파 집단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 등의 발언을 했다가 경찰에 고발당했다. 경찰은 이 전 위원장이 면직된 다음 날 곧바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이 전 위원장 측은 국회 필리버스터 참여 등 공무 수행을 이유로 경찰과 출석 일정을 조율했다고 반발했다. 이후 법원은 체포적부심에서 이 전 위원장 측 의견을 받아들여 그를 석방했고, 경찰의 ‘과잉 수사’가 화두로 올랐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작년 10월 2일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경찰에 체포된 뒤 수갑 찬 손을 들어보이며 영등포경찰서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작년 10월 2일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경찰에 체포된 뒤 수갑 찬 손을 들어보이며 영등포경찰서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형사법 전문 한 변호사는 “전 정권 인사에는 과잉 수사 논란까지 감수한 경찰이 여권 인사들의 의혹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며 “경찰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했다. 법조인 출신인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도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진숙은 체포하고 해외 도피한 김경은 임의 출석, 이런 일이 벌어져도 되나”라며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긴급체포 안 할거라고 예상했다만 설마 진짜 그럴 줄은… 이래도 각본이 없냐”고 했다.


이런 가운데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12일 오전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좌고우면하지 않고, 나중에라도 의혹이 남지 않도록 절차대로 원칙대로 신속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김 시의원을 최대한 빨리 재소환해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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