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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축복이다 [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 (9)

조선일보 고혜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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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축복이다 [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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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은퇴 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벤 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미국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은퇴 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벤 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삶이라는 전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이 어떻게 삶을 붙잡는지”를 보여주는 연극이란다. 제목은 ‘바람의 용사들’. 작년 12월 말 “나이 든 전사들이 온갖 어려움을 딛고 끝까지 꿈꾸는 용기를, 아마추어들이 열연한다”는 소개에 이끌려 공연장을 찾았다. 눈길을 끈 건 무대를 만든 사람들과 배우들. 이 작품을 올린 ‘화동연우회’는 연기에 빠진 K고 동문들이 1991년 결성한 극단이다. 극단 이름은 학교가 있던 옛 동네 명칭에서 따왔다. ‘바람의 용사들’은 화동연우회의 32번째 정기 공연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이 모임의 현재 회장은 가구제조 중견기업 퍼시스와 일룸 대표를 지낸 양영일씨가 맡았다. 그가 번역과 무대 장치도 했다. 3개월간의 연습 끝에 동숭동의 한 연극 무대에 열흘간 오른 초보 연기자들은 이영훈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이우종 전 청운대 총장 등이다. 모두 70이 넘었지만 ‘노익장’을 뽐냈다. 기억력이 가물가물해 대본·연기 순서 외우는 데 실수가 있을 법한데 시종일관 그들 연기는 거침이 없었다. 익숙하고 그럴듯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이들을 보는 일은 즐겁고 의미가 있다.

지난 세월을 묻어두고 설렘으로 자신의 또 다른 역량에 도전하는 이들을 만나는 건 기쁨이다.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 감사한 일. 가끔 소식을 접하는 ‘젊은 노년’ 중 박동창 맨발걷기 국민운동본부 회장이 떠오른다. 은행장과 금융연구소장 등을 지낸 그는 퇴직 후 10년간 ‘맨발걷기’의 중요성을 전파, 전국 산야에 맨발걷기용 흙길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온 사람이다. 지금도 질병 극복과 건강한 삶의 한 방법으로 그 시민운동을 주도 중이다. 또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를 지낸 권순주씨는 정년 이후 맛있는 복숭아 농사에 도전, 10여 년째 성실한 농민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 국제 공인 프로젝트관리전문가로 과거 30년간 현대건설에서 현장소장·상무 등을 지낸 손영재씨. 그는 퇴직하자 성경 공부에 전념, 전문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수많은 기독교인의 영적 성장을 위해 10년간 명강사로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1959년 국내 상업방송 최초의 아나운서로 활약했던 이성화씨는 지금도 관악FM 등의 DJ로 활동 중이다. 그들은 행동으로 말 없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인생에 정년은 없고 주어진 삶은 선물이니 감사하며 열심히 가꿔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현재는 꽤 오래 지속적인 열정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도전은 그 종류와 크기가 다양하다. 크든 작든 각자의 사정과 스케줄에 따라 루틴한 일정으로 밀고 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 나 또한 퇴직 이후 ‘기술을 장착한 실용적 인간’이 되고자 여러 분야에 도전했다. 연이은 경험들이 전해준 답안은 도전 대상이 무엇이든 서로 코드와 인연이 맞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꾸준하고 소소한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목표 몇 가지를 정해 놓고 어쩌다 생각이 나 달려들면 뭐든 작심삼일의 공염불이 되고 그동안 쏟아부었던 시간은 산산이 흩어져 가루가 돼 버린다. 그래서 매년 말 빈손에 공허함만 가득 차게 된다.

“시간은 당신의 친구 또는 적이다. 시간은 당신을 늘 성장시키거나 당신의 결점을 폭로한다”는 말이 있다.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우왕좌왕, 무기력감에 갇혀 있다면 당신의 지난 시간 활용도를 들여다볼 일이다. 특히 마모된 육신의 전환기에 맞게 삶의 방향을 재조정해야 하는 우리 또래의 목표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과정 중에 있으니까. 도전은 일상을 젊게 하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신뢰, 정서적 안정을 자산으로 안겨준다. “시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 실패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2026년 새 열차가 출발했다. 새해는 축복의 새 출발선이다.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다짐의 축복….

[고혜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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