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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가치와 신뢰

조선일보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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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안성기씨의 맥심 광고. /동서식품 제공

고(故) 안성기씨의 맥심 광고. /동서식품 제공


요즘 광고 시장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갑니다. 트렌드 변화 주기는 짧고 모델은 자주 바뀝니다. 신선함과 화제성이 광고의 핵심 키워드가 되면서 많은 브랜드가 새로운 얼굴로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으려 애를 씁니다.

과거와 지금의 광고 시장 환경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고(故) 안성기씨가 40년 가까이 한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며 남긴 발자취는 효율과 속도를 우선시하는 오늘날 광고 문법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임이 분명합니다.

안성기씨는 1983년 동서식품 모델로 기용돼 2021년까지 맥심을 비롯한 이 회사 주요 제품의 얼굴 역할을 맡았습니다. 한 모델이 한 브랜드와 이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경우는 국내 광고사에서도 손에 꼽힙니다. 그가 출연한 광고에 나온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커피, 이제는 향입니다” 같은 수많은 광고 카피는 지금까지도 회자됩니다.

안성기씨가 맥심 모델로 활약하기 시작한 1980~1990년대는 인스턴트커피가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던 때였습니다. 당시 커피 시장에서 중요한 경쟁 요소는 맛이나 가격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믿고 마실 수 있는가’라는 신뢰의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차분하고 성실한 이미지의 안성기씨는 그 메시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모델이었을 겁니다.

장기 모델 전략의 핵심은 일관성입니다. 한 사람이 오랜 시간 한 제품의 모델로 등장하면 소비자는 그 인물을 통해 브랜드를 기억하게 됩니다. 물론 위험도 따릅니다. 모델의 이미지 변화나 사회적 논란은 곧바로 브랜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장기 모델을 선택하는 기업일수록 모델의 대중적 신뢰도와 삶의 태도를 신중히 따져볼 수밖에 없습니다. 안성기씨는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 ‘국민 배우’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카메라 밖에서도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며 품위를 지켰던 그의 성실함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결을 같이했습니다.

그는 이제 세상을 떠났고 그가 출연했던 광고들도 과거의 기록이 됐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모되고 사라지는 요즘,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켰던 그의 부재는 ‘신뢰’라는 단어의 무게를 새삼 일깨워줍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만큼이나 따뜻했던 그의 미소를 기억하며, 영원한 국민 배우 안성기씨의 명복을 빕니다.

[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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