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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老 대사가 남긴 유산… 한·러 관계 새판이 필요한 순간

조선일보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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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老 대사가 남긴 유산… 한·러 관계 새판이 필요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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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승의 海外事情]
북한·러시아 밀월의 상징
故 마체고라 駐北 러 대사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교(MGIMO) 홈페이지에 실린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 부고 기사 관련 사진. 작년 12월 사망한 마체고라 대사는 2014년 부임 후 11년간 재임해 역대 최장수 주북 러시아 대사라는 기록을 세웠다./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교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교(MGIMO) 홈페이지에 실린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 부고 기사 관련 사진. 작년 12월 사망한 마체고라 대사는 2014년 부임 후 11년간 재임해 역대 최장수 주북 러시아 대사라는 기록을 세웠다./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교


작년 12월 6일 사망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駐北) 러시아 대사는 대사가 되기 전부터 외교가에서 꽤 알려진 사람이었다. 러시아 외무부에서 한국을 담당하는 과장·부국장을 역임했고, 부산 주재 러시아 총영사관에 근무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제일 큰 이유는 출중한 한국어 실력이었다. 원래 사회주의 국가들은 지역 전문성 위주로 외교관을 양성하기 때문에 언어 능력이 좋다. 하지만 마체고라 대사는 그중에서도 발군이었다. 다른 한국 담당 러시아 외교관들은 버벅거릴 때도 있는데, 그는 청산유수였다. 가끔은 구수한 속어 표현도 찰지게 구사하는데, 눈 감고 듣고 있으면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었다.

마체고라 대사와 길게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던 것은 내가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근무하던 시절(2011~2014)이다. 당시 러시아는 2012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하겠다며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나선 상태였다. 그래서 모스크바 사람들의 극동 출장이 잦았고, 당시 러시아 외교부 부국장이었던 마체고라도 종종 블라디보스토크를 찾곤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면 마체고라 대사는 ‘러시아통’인 우리 총영사님께 연락을 하곤 했다. 그러면 정무 담당이었던 내가 총영사님을 모시고 나가서 마체고라 대사와 한식 레스토랑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비빔밥을 아주 맛있게 먹던 마체고라 대사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작년 5월 주북 러시아 대사관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행사에 참석한 김정은·김주애 부녀를 맞이하는 마체고라 대사. /조선중앙통신

작년 5월 주북 러시아 대사관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행사에 참석한 김정은·김주애 부녀를 맞이하는 마체고라 대사. /조선중앙통신


마체고라 대사는 입담이 좋았다. 옛날 소련 시절 일화부터 시작해서 외교관 생활 중 겪었던 일들까지 화제가 무궁무진했다. 물론 한국어였다. 하루는 하도 신기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왜 한국어를 선택하신 거예요?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한참을 껄껄 웃은 후 마체고라 대사가 내놓은 답변이 의외였다. “난 원래 영어를 하고 싶었어요. 미국 사람들이랑 협상도 하고, 워싱턴 근무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한국어를….” “우리 때는 소련 시절이잖아요. 전문 분야는 당에서 정해주는 겁니다.” 마체고라 대사는 1955년생으로 1978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교(MGIMO)를 졸업했다. 러시아 외교관들은 대부분 MGIMO 출신이다.

“하루는 우리 학생들을 강당에 다 모이게 하더니 한 명씩 이름과 전문 분야를 부르는 겁니다. 이반 아무개, 영어! 이고르 아무개, 독일어!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내 이름을 부르더니 ‘한국어!’ 이러는 겁니다. 실망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영어는 인기가 높아서 이미 당 간부 자녀들 몫으로 다 정해져서 나 같은 보통 집안 사람한테는 자리가 없었다네요. 하여간 그래도 일단 주어진 분야니까 열심히 공부했죠.”


뭔가 극적인 계기를 기대하다가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마체고라 대사는 직업의 자유가 제약된 소련 공산주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이었다.

항상 동네 할아버지처럼 푸근하던 마체고라 대사도 사람이 돌변할 때가 있었다. 하루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우크라이나 이야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눈빛이 바뀌었다. 당시는 아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되기 전이었는데도 그랬다. “지금 키예프(키이우)에 CIA가 몇 명 들어와 있는지 압니까? 내가 걔네들 일하는 사무실 번호도 알려줄 수 있어요.” 그러면서 미국에 대한 성토를 시작하는데, 언성이 높아졌다. 요약하자면, 우크라이나 문제는 결국 미국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속으로 ‘당신도 결국 외교관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문제는 몰라도 ‘진정한 라이벌’ 미국 얘기만 나오면 민감해진다. DNA처럼 몸에 새겨진 자기네 핵심 국익에 대한 판단이 마치 조건반사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마체고라 대사에게 들었던 얘기 중에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도 있었다. 옛날 자신이 평양 주재 무역대표부에 근무하던 시절 일인데, 하루는 대사관 경내로 북한인 한 명이 뛰쳐 들어왔다고 한다. 보위부 직원으로 보이는 북한인들에게 쫓기고 있던 그는 살려달라며 도망쳐 온 것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던 찰나, 뒤쫓아온 북한인들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 북한인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한다. 대사관 경내는 국제법상 불가침 영역이다. 그런데 거기서 사람을 죽인다. 북한의 흉포함에 전율했던 기억이 난다.


원래 푸틴 시대의 러시아 외교는 우리에게 우호적이었다. 비핵화라는 외교 목표를 공유했으며, 러시아는 남북한 간 균형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재작년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 이후 러시아의 정책은 변했다. 이젠 비핵화는커녕 북한 핵 문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남북한 간 등거리 외교 역시 폐기했다. 북한은 러시아의 ‘혈맹’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북한의 국익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 5대 핵보유국으로서의 책임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주역 중 한 명이 마체고라 대사다.

이제 내가 알던 푸근한 동네 할아버지, 마체고라 대사는 가고 없다. 설사 그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아마 목청을 높여 가며 언쟁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만큼 러시아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바뀐 것이다. 마체고라 대사의 명복을 빈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정책으로 남아 우리를 옥죄고 있다. 이젠 러시아의 정책 변경에 대항하여 새로운 판을 짜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인지 모른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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