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이명옥의 아트&멘토]
정신분석학 창시자 프로이트
이론 화폭에 옮긴 화가 달리
[이명옥의 아트&멘토]
정신분석학 창시자 프로이트
이론 화폭에 옮긴 화가 달리
“나는 마약을 하지 않는다. 내가 곧 마약이다. 당신들은 나를 복용해도 된다. 나는 환각을 일으키는 존재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허풍 같겠지만 빈말은 아니다. 달리는 자기 최면을 통해 ‘깨어 있는 꿈’에 이르게 하는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탐구했던 무의식의 세계를 그림으로 구현한 업적을 인정받아 ‘미술계 프로이트’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1922년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야 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발견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열여덟 살의 달리는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책 한 권을 만난다. 프로이트가 쓴 ‘꿈의 해석’이었다. 인간의 꿈과 무의식을 해부한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충격적인 이론을 펼친다. “인간은 이성적인 것 같지만 무의식과 성적 충동에 지배당하는 존재이며 꿈은 우리가 낮 동안 채우지 못한 욕망을 해소하는 비밀 통로”라고 말이다. 이 책에 완전히 사로잡힌 달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였다”고 회상한다.
달리는 남달리 예민한 아이였다. 부엌 문틈 사이로 붉은 손을 가진 짐승 같은 여자들을 훔쳐보기도 하고, 갈루치카라는 가상의 러시아 소녀를 만들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달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보였다. 그런 그의 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이 하나 있었다. 달리가 태어나기 전 그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형이 세상을 떠났다. 부모는 죽은 아이의 이름을 달리가 물려받게 했고, 다섯 살이 된 그를 형의 무덤으로 데려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바로 형의 환생이다.” 그 순간부터 달리는 죽은 형의 대역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애증까지 더해져 늘 불안에 떨었다. 이런 혼란의 한복판에서 만난 프로이트의 언어는 달리가 겪던 분열된 자아와 강박증에 처음 이름을 붙여줬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의 상처가 결함이 아니라 위대한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발견
무의식 속 시간을 시각화한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1931). /뉴욕현대미술관 |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열여덟 살의 달리는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책 한 권을 만난다. 프로이트가 쓴 ‘꿈의 해석’이었다. 인간의 꿈과 무의식을 해부한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충격적인 이론을 펼친다. “인간은 이성적인 것 같지만 무의식과 성적 충동에 지배당하는 존재이며 꿈은 우리가 낮 동안 채우지 못한 욕망을 해소하는 비밀 통로”라고 말이다. 이 책에 완전히 사로잡힌 달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였다”고 회상한다.
달리는 남달리 예민한 아이였다. 부엌 문틈 사이로 붉은 손을 가진 짐승 같은 여자들을 훔쳐보기도 하고, 갈루치카라는 가상의 러시아 소녀를 만들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달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보였다. 그런 그의 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이 하나 있었다. 달리가 태어나기 전 그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형이 세상을 떠났다. 부모는 죽은 아이의 이름을 달리가 물려받게 했고, 다섯 살이 된 그를 형의 무덤으로 데려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바로 형의 환생이다.” 그 순간부터 달리는 죽은 형의 대역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애증까지 더해져 늘 불안에 떨었다. 이런 혼란의 한복판에서 만난 프로이트의 언어는 달리가 겪던 분열된 자아와 강박증에 처음 이름을 붙여줬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의 상처가 결함이 아니라 위대한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그림이 된 프로이트 이론
잠듦과 깸의 아슬아슬한 긴장 상태를 표현한 ‘잠’(1937). /개인 소장 |
이때부터 달리는 프로이트의 충실한 제자를 자처하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의 대표작 ‘잠’(1937)은 프로이트가 이론으로 설명한 꿈의 구조와 기능을 회화로 번역한 것이다. 화면 중앙에 거대하고 부드러운 머리 하나가 떠 있다. 눈은 단단히 감겨 있고 표정은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해 보인다. 이 머리에는 몸이 없다. 뒤쪽으로 가늘고 길게 늘어진 형체가 힘없이 축 처져 있을 뿐이다. 눈꺼풀, 코, 입술, 턱, 신체의 각 부분이 가느다란 목발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다. 언제 목발이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운 모습. “나는 잠이라는 괴물을 실처럼 가느다란 몸 위에 무거운 머리를 이고 현실이라는 목발로 겨우 균형 잡고 있는 존재로 상상했다.”
이 그림은 프로이트가 말한 “꿈은 소원 성취를 통해 수면의 방해물을 제거하려는 시도이며 꿈은 수면의 수호자”라는 개념을 가장 창의적으로 표현한 사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우리가 계속 잘 수 있도록 잠을 지켜주는 해결사다. 자는 동안 목이 마르면 시원한 물을 마시는 꿈을 꾸게 한다. 갈증이 해결됐으니 계속 자도 좋다고 우리를 속인다. 달리에게 잠은 거대한 괴물 같은 무의식을 가느다란 현실의 목발이 간신히 떠받치고 있는 상태이자, 언제든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위태로운 균형이었다. 여기서 달리의 천재성이 빛을 발한다. 대부분의 화가가 꿈속 장면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면 달리는 잠을 붙잡아 두려는 힘과 깨우려는 힘 사이의 팽팽한 긴장 상태 그 자체를 그려낸 것이다.
◇두 천재의 역사적 만남
1937년 작 ‘나르시스의 변형’. /테이트 모던 |
다음 장면은 1938년 7월 19일 런던으로 옮겨간다. 이곳에는 나치를 피해 망명 중이던 82세의 프로이트가 살고 있었다. 34세의 달리는 마침내 자신의 우상인 프로이트와 마주 앉게 된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와 영국인 후원자 에드워드 제임스의 도움 덕분이었다.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보내 “달리는 이 시대의 유일한 천재 화가이자 당신의 예술가 제자 중 가장 충실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이 진정한 천재는 수년 동안 당신을 만나기를 갈망해 왔다”고 소개했다. 달리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멘토와의 만남을 위해 자신의 역작 ‘나르시스의 변형’(1937)을 직접 들고 왔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훌륭하게 프로이트의 이론을 회화로 구현해 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 그림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사랑에 빠져 죽은 뒤 수선화로 다시 태어났다는 미소년 나르시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화면 왼쪽 물가에 태아처럼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된 청년이 나르시스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나르시스와 거의 똑같은 윤곽을 가진 거대한 석회암 손이 솟아 있다. 청년의 부드러운 육체가 차갑고 단단한 돌덩이로 변해버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성적 본능의 충동인 리비도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만 향하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달리는 이 정의를 빌려와 타인과의 소통을 끊고 자기애에 갇힌 자아는 화석처럼 굳어버린다고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이 감싸 쥔 알을 자세히 보면 표면에 금이 가 있고 그 틈 사이로 한 송이 수선화가 피어나고 있다. 죽음처럼 단단한 껍질을 깨고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달리는 한 화면 안에 두 자아를 나란히 배치했다. 한쪽에는 자기애에 갇혀 붕괴되는 병든 자아, 다른 한쪽에는 자신의 결핍과 상처를 직면한 뒤 다시 태어나는 건강한 자아. 프로이트적 시각으로 읽어보면, 나르시시즘의 껍질이 깨지고 난 뒤에야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창조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전해지지 못한 초상화
1938년 달리가 그린 프로이트 초상화. /프로이트 박물관 |
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에서 달리는 특별한 기록을 남겼다. 프로이트를 초상화 스케치로 남긴 것이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도 달리는 화가의 본능을 발휘했다. 프로이트에게 정중하게 허락을 구한 뒤 스케치북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선으로 그의 얼굴을 담아냈다. 그런데 초상화를 자세히 보면 머리 위쪽은 인간의 두개골이면서 동시에 달팽이의 등껍질을 닮았다. 왜 하필 달팽이였을까?
흥미로운 일화가 숨어 있다. 어느 날 식당에서 신문을 보던 달리는 프로이트의 망명 소식을 읽고는 갑자기 식당이 떠나가라 이렇게 외쳤다고 전해진다. “나는 프로이트의 형태학적 비밀을 발견했다! 프로이트의 두개골은 달팽이처럼 나선형이어서 뇌를 꺼내려면 바늘을 써야 한다!”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든 프로이트의 사상 체계를 달팽이 껍질의 나선 구조에 비유해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안타깝게도 프로이트는 생전에 이 초상화를 보지 못했다. 프로이트는 당시 구강암으로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츠바이크는 이 그림을 환자에게 보여주면 큰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이 초상화는 달리가 간직하게 됐고, 그의 사후에 공개됐다. 현재 세 점이 런던 프로이트 박물관과 스페인 달리 재단에 소장돼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물리학으로
‘기억의 지속’ 발표 20여 년 뒤 똑같은 배경으로 양자역학적 세계를 그려낸 ‘기억의 지속의 해체’(1954).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
이듬해 프로이트가 83세로 세상을 떠난 뒤 달리는 새로운 멘토를 찾아 나선다. 그가 선택한 인물은 양자역학의 선구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였다. 달리는 1951년 ‘신비주의 선언’에서 이렇게 밝힌다. “초현실주의 시대에 나는 내면 세계와 나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세계를 그렸다. 오늘날 물리학의 세계는 심리학을 초월했다. 이제 나의 아버지는 하이젠베르크다.” 이 놀라운 변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 두 점이 있다.
‘기억의 지속’(1931)은 심리적 시간을 다룬 20세기 미술의 걸작이다. 치즈처럼 녹아내리는 시계들은 무의식 속 시간을 상징한다. 꿈속에서는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 기준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기억과 감정에 따라 시간은 얼마든지 늘어지고 줄어들 수 있으니까. 그로부터 20여 년 뒤 달리는 똑같은 해변을 배경으로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렸다. ‘기억의 지속의 해체’(1952~1954). 익숙한 해안 풍경이 격자와 작은 블록으로 잘게 분해돼 미세한 간격을 유지한 채 공중에 떠 있다. 양자역학적 미시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처음에는 인간의 깊은 속마음을 탐구하던 달리가 우주와 물질의 근본 구조를 향해 시야를 확장해 나간 것이다. 이 천재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낯선 분야를 과감히 연결하라는 것, 그 사유의 교차 지점에서 창조의 새 문은 열린다는 것.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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