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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말 걸지 마세요”... 미용실·택시에 등장한 ‘대화 선택권’

조선일보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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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말 걸지 마세요”... 미용실·택시에 등장한 ‘대화 선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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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침묵할 권리’의 확산
스몰토크 거부자들
온라인 예약 옵션에 ‘조용히 시술받기’를 추가하는 미용실이나 네일숍이 늘고 있다. 사진은 미용실 온라인 예약 플랫폼에 있는 해당 옵션 화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온라인 예약 옵션에 ‘조용히 시술받기’를 추가하는 미용실이나 네일숍이 늘고 있다. 사진은 미용실 온라인 예약 플랫폼에 있는 해당 옵션 화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조용히 시술받길 원해요.’

직장인 이모(32)씨는 최근 온라인으로 서울 강남구 회사 근처에 있는 미용실을 예약하다가 이런 옵션을 발견했다. 파마나 염색을 하는 내내 미용사가 손님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는 ‘대화 거절’ 옵션이었다. 이씨는 “회사에서의 ‘스몰토크(small talk·일상을 주제로 한 가벼운 대화)’로 진이 빠지는 참에 잘됐다 싶어 선택했다”며 “평소 미용사가 말 거는 게 싫어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는데, 필요한 질문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아 편했다”고 말했다.

미용실처럼 좋든 싫든 의례적인 대화가 따라붙던 서비스 공간에 이른바 ‘대화 선택권’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적당히 말을 걸어 달라’ ‘대화는 필요 없다’ 등의 옵션을 제시하고 고객이 직접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말하지 않을 자유’를 넘어선 ‘침묵할 권리’의 등장인가.

커트 부탁드려요, 대화 빼고

전통적으로 ‘미용실 토크’는 미용사와 손님 사이의 어색함을 풀고 긴장을 완화하는 장치였다. 미용사와 고객이 길게는 몇 시간가량 함께 있어야 하는 서비스 특성상 자연스럽게 생긴 관행이었다. 미용사 입장에서는 친밀감을 형성해 신뢰를 확보하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영업 수단이기도 했다. 고객과 직원이 마주 앉아 있어야 하는 네일숍도 마찬가지다. 미용실·네일숍 업계에서는 “스몰토크를 잘해야 손님이 는다”며 손님과의 대화 주제를 서로 공유하거나 질문하는 법을 연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온라인 검색창에는 “동네에 말 안 거는 미용실 없나요?” “영등포 스몰토크 안 하는 미용실 아시는 분” 같은 글이 하루에도 수백 건씩 올라온다. “미용사가 하는 질문이 부담스러워 미용실 갈 때마다 고민”이라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미용실 등에서 진행되는 스몰토크를 스트레스로 여기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대화 여부를 별도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미용실·네일숍이 생겨나고 있다. 강남구에 있는 한 미용실은 지난해 11월 ‘조용히 시술받고 싶다면 메모에 적어 달라’는 문구를 온라인 예약 옵션에 추가했다. 경기도 김포의 한 네일숍도 ‘시술에 필요한 대화만 오가는 게 좋아요’라는 옵션을 넣었다. 미용실·네일숍 예약 플랫폼 ‘마메드네(구 카카오헤어숍)’는 2024년 8월부터 모든 예약 옵션에 ‘조용히 시술받고 싶어요’를 추가했다. 업체 관계자는 “사용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택시도 이용자가 침묵을 원하는 공간으로 많이 꼽힌다. 티머니모빌리티는 앱에서 택시를 호출할 때 ‘대화 없이’ 옵션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용자가 이를 고르면 기사의 휴대전화 화면에 해당 문구가 뜨는 식이다. ‘대화 선택권’은 피부 관리실이나 눈썹 왁싱숍 등 업종으로 확대되고 있다.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가 제한적인 공간에서 상당 시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 시간 온전히 누리고 싶어

이런 ‘침묵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성인 14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용히 옵션’에 대해 79.9%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7.4%에 불과했다.

대화가 싫은 구체적인 이유를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용실과 택시 모두에서 대화가 싫은 이유 1위로 ‘맞장구치는 행위 등이 피곤해서(미용실 76.4%, 택시 74.7%)’가 꼽혔다. 이어 미용실에서는 ‘개인 정보 노출 우려(30.8%)’가, 택시에서는 ‘정치 이야기 등 의견 충돌 염려(31.1%)’가 2위를 차지했다. ‘대화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20대 여성), ‘그저 쉬고 싶다’(60대 여성)고 답한 사례는 서비스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어 하는 이용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대화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미용사가 잡담에 신경 쓰다 정작 머리를 요구 사항에 맞게 해주지 못할 수도 있고, 택시 기사가 말하느라 운전에 집중하지 못해 사고가 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대화는 갈등의 잠재적 원인?

전문가들은 고객이 원치 않는 대화를 거부할 수 있는 ‘침묵할 권리’ 확산을 ‘감정 노동의 회피’ 현상으로 분석한다. 일상 대화에서 맞장구를 치는 것조차 감정 노동으로 받아들이며 부담으로 느끼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관심 없는 주제에 반복적으로 공감해야 하는 상황을 갈등의 잠재적 원인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 여파로 과거에 비해 대면 접촉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졌고 사회 전반적 갈등도 고조된 상황”이라며 “불필요한 대화로 또 다른 갈등에 노출되는 것을 회피하려는 심리”라고 말했다.

‘대화 선택권’은 ‘소비자 선택 기준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 미용실 등은 단골 관리가 매출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대화가 중요하게 여겨졌다”며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이 친밀함보다 결과물을 더 중시하면서 이 흐름에 맞게 영업 전략 또한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리뷰나 후기가 갈수록 소비자들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자 업체들이 친분 쌓기에 의존하지 않고 소비자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맞춤형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절 어려워… 영업 사전 차단

‘영업 거절’을 힘들어하는 이들은 대화 선택권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며 반기고 있다. 계획한 시술이나 커트 외에 불필요한 추가 시술을 권유받을까 봐, 미용실에서 대화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머릿결이 상했다”는 말을 추가 시술 권유로 느껴 불편해하던 사람은 아예 대화 창구를 닫음으로써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다. 직장인 유모(34)씨는 “거절이 필요한 상황 자체가 싫어 ‘조용히 옵션’이 반갑다”고 했다.

서비스 제공자들도 대체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30년 차 미용사 조모(58)씨는 “손님이 성향을 미리 말해 주는 게 우리도 속이 편하다”고 했고, 한 30대 미용사는 “궁금하지 않은 걸 묻는 게 나도 힘들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 김모씨는 “승객이 하차 후 앱에서 평점을 낮게 주는 것보다 원하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침묵할 권리’ 확산이 사회적으로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통의 대화나 소통이 어려워진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에서 계층과 관심사가 지나치게 다양화하면서 낯선 사람과 공통의 대화 주제로 ‘공론의 장’을 형성하기 어려워졌다”며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나 단체 채팅방처럼 성향이 비슷한 집단끼리 소통하려는 분위기가 강해지는 것은 결국 사회적 연대감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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