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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입 열면, 금배지 휘청... 동지에서 남남 된 보좌관들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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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입 열면, 금배지 휘청... 동지에서 남남 된 보좌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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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우 시대는 끝... “보좌관, 이제 정당인 아닌 직업인”
2025년 12월 18일 여야 국회의원 및 보좌진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 뉴스1·그래픽=송윤혜

2025년 12월 18일 여야 국회의원 및 보좌진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 뉴스1·그래픽=송윤혜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실세 국회의원들과 전·현직 보좌관의 ‘갑질 폭로전’을 바라보는 OB 국회의원·보좌관들의 마음이 복잡하다. 80년 가까운 정당사에 ‘한솥밥 먹는 식구들’이 이렇게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은 처음 본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한 전직 국회의원은 “연말에 전·현직 의원 등 여의도 주변 사람들을 만났는데 한목소리로 ‘라테는(나 때는)’을 얘기하더라”며 “동지적 관계는 사라지고 보좌진도, 의원도 서로를 도구로 보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석에서는 의원과 보좌관이 계급장 떼고 ‘형·아우’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그룹을 중심으로 보좌관을 하다 국회의원이 된 사례도 적지 않다. 배지를 달면 그의 후배들로 의원실을 꾸렸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한 몸처럼 움직이는 동지애로 뭉쳤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만년 국회만 바라보고 정치를 평생의 업으로 삼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취업으로 접근하는 이가 많아졌다. 보좌진 출신으로 배지를 단 한 재선 의원은 “정치인을 꿈꾸며 정치 근육을 키우기보다 의원실 경력을 기업·로펌 등으로 ‘점프 업’하기 위한 스펙으로 삼는 보좌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보좌관이 이제 ‘정당인’이 아닌 ‘직업인’이 됐다는 것이다.

“○○○ 의원실 경력이면 꽃길 열린다”?

국회 보좌관들의 기업행은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활발해졌다. 이번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미진한 대응으로 논란이 된 쿠팡의 경우, 작년 4급 보좌관 9명(계열사 포함)이 쿠팡 이직을 위해 취업 심사를 받았다. 취업 심사 공개 의무가 없는 비서관·비서 등 보좌진 전체로 확대하면 훨씬 많은 인원이 쿠팡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기업에서 한 해에 보좌관 출신을 이렇게 많이 빨아들인 것은 이례적이다.

국회 전체로 봐도 보좌관들의 민간 분야 이직은 증가 추세다. 경실련과 함께 2020년 3월부터 작년 12월까지 공개된 국회 취업 심사 자료를 분석했더니, 이 기간 총 255명의 보좌관이 이직 취업 심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80.4%(205명)가 기업, 로펌·회계법인 등 서비스 업체, 협회·조합 등 이해관계 단체, 민간 교육·의료·연구 기관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간 분야 중에서도 대기업(100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취업 심사 건수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30~40명 수준이었지만, 2024년과 2025년에는 50명대였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과거에는 신청 건수가 많지 않아 취업 심사를 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를 비정기적으로 열었지만 2021년부터는 매월 진행한다”고 말했다.

작년의 경우 쿠팡 외에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이브’, 법무법인 ‘YK’로 이직을 심의한 사례가 2건씩이었다. 전체 기간으로 늘렸을 때 대기업 중에는 쿠팡이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SK 9건, KT·LG 각각 7건, 카카오·CJ 각각 5건 등의 순이었다. 특히 기업은 사법·오너 리스크 등 위기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국회 출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편이다.


그런 맥락에서 기업은 보좌관을 찾을 때 상임위 활동 등으로 쌓은 전문성보다는 여의도에서의 영향력과 입지 등을 따지는 경향이 강하다. 뭐니뭐니 해도 ‘국회 출신 대관’의 제1 임무는 ‘국정감사 증인 빼내기’다. A대기업의 임원(전무급)은 “오너의 국회 출석 막기, 회사 관련 법안에 대한 로비가 주 임무이기 때문에 결국 인맥이 중요한 자질”이라고 말했다. 국회 경력 5년 미만인 한 보좌관은 “처음 국회에 들어올 때 ‘당대표실’이라는 간판 하나 보고 합류했다”며 “영향력이 있는 의원실에 있어야 다음 포지션으로 옮길 때 유리하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노란봉투법·중대재해법 등 기업에 부담이 가중되는 법안 추진에 힘이 쏠리면서 이 같은 ‘보좌관 전관예우’의 필요성이 커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보좌관·청와대 경력을 바탕으로 뉴미디어 기업에 취업한 B씨는 억대 연봉과 사실상 한도가 없는 법인카드, 골프장 회원권 등의 대우를 받았다. 그가 보좌했던 국회의원이 재선에 실패한 뒤 옮긴 자리에서 받은 연봉보다 B씨의 연봉이 많았다.

국회도 ‘MZ 오피스’

여느 일터처럼 국회도 민주적이고 평등한 분위기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MZ 중심으로 구성원의 연령대가 확 낮아진 영향도 크다. 황규환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장은 “이제 40대 초반이 보좌관 주류를 이루고, 50대 보좌진은 10%도 안 되는 것 같다”며 “현실적으로 과거와 다른 신인류가 국회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2010년 언저리만 해도 “의원회관 경력으로 공무원 연금 수령 의무 복무 기간(20년)을 다 채웠다”고 말하는 시니어 보좌관이 꽤 있었다.


특히 과거 운동권 출신을 중심으로 한 보좌진은 같은 정파 사람들이 모인 ‘정당인’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의원실과 당의 지침을 경제적 이익이나 사생활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야 갈등이 격화된 ‘동물 국회’ 시절, 국회 안팎의 대치에서 몸싸움에 앞장서는 것을 이들 ‘경력직’ 보좌진이 담당하기도 했다. 이때 부상을 입었다고 당대표 표창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요즘에는 주말 집회나 외부 행사 때 보좌진을 동원하면 ‘수당 주느냐’고 묻더라”면서 “당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일반 회사 다니듯 내 할 일만 한다는 MZ가 많은데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3년 정도 일하다 중견기업으로 옮긴 C씨는 “애초에 정치나 선거에 뜻을 두고 국회에 취업한 건 아니었다”며 “국회와 입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씨와 함께 일한 동료들도 비슷하다. 정치권에 뿌리를 두고 시작한 보좌진 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경력 자체를 ‘꽤 괜찮은’ 스펙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당장 국회의원부터 운동권·시민사회 출신이 크게 줄어든 영향도 있다. 86 보좌관 출신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인재 영입의 주요 공급처였던 시민 단체 풀이 소진됐고, 중도·외연 확장 차원에서 전문가 그룹 영입이 늘었다”며 “국회 생태계 자체가 바뀐 것이기 때문에 의원·보좌진 모두 기능인으로서의 고용 관계가 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보좌관의 역습

‘수평적’ 문화가 확산한 덕일까. 흔히 국회의원 앞에서 을(乙)로 불렸던 보좌관들의 역공이 만만치 않다. 작년 7월 무소속 강선우 의원(당시 민주당 소속)은 보좌관 갑질 의혹으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자진 사퇴했다. 현역 의원의 첫 낙마 사례였다. ‘현역 불패’라는 오랜 공식이 깨진 게 ‘집안싸움’ 때문이었다는 데 국회도 술렁였다.

이번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도 보좌진 갑질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 후보자가 인턴에게 “널 죽였으면 좋겠다”는 등의 막말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의힘 소속 30대 비서관은 “옛날엔 의원에게 얻어맞는 일도 있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최근 사례는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치색을 떠나 이번 사안을 보는 2030대 보좌진들의 시선은 따갑다”고 했다. 기업과 보좌관을 두루 거친 여선웅 민주당 부대변인은 “기업에서는 상사들이 MZ 눈치를 보고 움직이는데 정치권은 다소 둔감했던 게 사실”이라며 “단순히 국회라는 ‘직장’을 택한 사람이 많아 의원과 스태프의 정서적 괴리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에서는 ‘갑질보다 을질이 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고참급 보좌관은 “폭로전에 나선 전직 보좌관들이 사건 당시에는 바로잡을 생각은 않고 입을 닫고 있었던 것 아니냐”며 “의원실 경력으로 누릴 건 누리고 뒤늦게 저격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앙 정부 부처의 한 과장은 “보좌관이 툭 하면 장차관을 불러들이고 무리한 자료 요청을 쏟아붓는 것은 아무도 통제하는 사람이 없는 갑질 중의 갑질”이라고 했다. 피감기관이나 기업 대관에서는 ‘갑질의 왕’ 보좌진 리스트가 공유되기도 한다.

거듭 반복되는 ‘보좌관발(發) 갑을 논쟁’은 다소 비정상이었던 의원과 보좌진 관계가 정상 궤도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갑질은 이제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작동하는 ‘발작 버튼’이 됐다. 견제·감독 사각지대에 있는 ‘별정직 공무원’ 보좌진도 언제든 ‘갑질’ 심판대에 오를지 모른다.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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