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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국민 생명에 ‘가격표’ 매기는 비정한 정치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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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국민 생명에 ‘가격표’ 매기는 비정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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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강풍 피해 잇따라...한때 지하철 1선도 운행 차질
무안 참사에도
서해 피살에도
발 빼는 민주당…
어떤 국민은
국가 부주의로
희생된 뒤에도
차별 당한다
국토교통부 산하 사고조사위가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다면 사망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분석을 뒤늦게 내놓았다. 잘못된 둔덕을 세우고 방치한 결과 발생한 국가 과실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었다./그래픽=양진경

국토교통부 산하 사고조사위가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다면 사망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분석을 뒤늦게 내놓았다. 잘못된 둔덕을 세우고 방치한 결과 발생한 국가 과실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었다./그래픽=양진경


쿠데타와 같던 대장동 항소 포기 때 익히 경험한 터라, 서해 공무원 사건의 항소 포기가 그리 놀랍진 않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마저 부정한 정권의 뻔뻔함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토록 ‘생명 존중’을 내세우던 이재명 정부였다. 취임 이틀째, 이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키는 일이 국가의 가장 큰 존재 이유”라고 했다. ‘국민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틈만 나면 “국가의 무관심·부주의로 국민이 목숨 잃는 일은 절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서해 사건이 바로 ‘국가의 무관심·부주의’로 한 국민이 목숨 잃은 참사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서해 공무원이 북한 해역으로 넘어간 사실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구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관련자들이 사건 진상을 은폐하려던 정황도 드러났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사실상 항소 자제를 주문하고, 검찰은 핵심 혐의 대부분의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진실 규명의 길을 끊었다. 책임자 처벌도 막았다. 이것이 어떻게 “국민 생명이 제1의 존재 이유”라는 정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같은 한 사람의 죽음이지만, 해병대원 사건 때는 달랐다. 민주당은 특검을 임명해 150일간 수사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2차 특검까지 띄웠다. 해병대원의 비극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서해 공무원은 그보다 더 심각한 국가의 방치 속에서 더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문 정부가 왜 구출에 소홀했는지, 왜 자진 월북으로 몰았는지, 국정원·국방부는 왜 문건 5000여 건을 삭제했는지, 꼬리무는 의문은 어느 것 하나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진실을 덮고 의혹을 지우려 한다. 서해 공무원은 우리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이 정권 사람들이 원래 이럴 리는 없다. 민주당의 ‘진상 집착증’은 지나치다 못해 광적(狂的)일 정도였다. 사고만 터지면 배후에 뭐가 있다느니, 희한한 음모론을 제기하며 온갖 형태의 조사와 수사, 각종 위원회·청문회를 밀어붙이던 것이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민주당은 ‘특별조사위’를 주도해 2년 가까이 진상 규명에 나섰다. 문 정권 들어선 ‘사회적참사조사특위’를 구성해 3년여 조사를 벌이고, 검찰 특수단에다 특검까지 출범시켰다. 그렇게 특조위·사참위·특수단·특검이 총 8년에 걸쳐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새로 밝혀낸 사실은 딱히 없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때는 민주당이 사고 5일 만에 국정조사 계획을 발표해 55일간 국회 특위를 가동했다. 예산 142억원이 배정된 매머드급 특조위를 만들고, 다 끝난 수사가 미진하다며 재수사를 위한 합동수사단까지 출범시켰다. 14명이 숨진 오송 참사도 민주당 주도로 국정조사가 이뤄졌다. 산재 사고가 나올 때마다 이 대통령은 ‘분노’를 표명하며 “책임자 엄벌”을 지시해 왔다. 그런데 유독 서해 공무원은 예외였다. 이 정권의 ‘생명 존중’은 국민이 누군지 낯을 가린단 말인가.


더욱 이해하기 힘든 미스터리는 무안공항 참사였다. 여객기 추락으로 179명이 숨졌다. 국내 항공 사상 최대 사고였다. 비행기가 충돌한 활주로 끝 둔덕이 규정을 어겨 잘못 세워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충격이 흡수되는 재질이 아닌 딱딱한 콘크리트로 채우고, 높이도 규정보다 높게 세운 사실이 밝혀졌다.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시설물이었지만 항공 당국은 방치했다. 국가의 부주의가 일으킨 인재(人災)임이 분명했다.

항공기 엔진이 멈춘 원인도 불분명했다. 국토부 산하 조사위는 조종사 과실 쪽에 무게를 두었다. 하지만 6800시간 비행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가 초보적 실수를 저질렀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고 원인은 미궁에 빠졌다. 이 정도면 절대 가만있을 민주당이 아니었다. 진상 조사다, 특검이다 들고일어나야 마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때 그토록 흥분하던 민주당은 피해자 규모도, 정부 과실도 더 심각한 무안 사고엔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 야당의 거듭된 요구에 뒤늦게야 국정조사에 응했을 뿐이었다. 사고 후 1년 넘도록 자료 공개도 0건, 책임자 구속도 0건에 그쳤다. 유족 대표는 “국가가 단 한 번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국토부 자체) 조사 결과를 먼저 지켜보자”고만 했다. 이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과 사뭇 달랐다.


민주당 정권이 발 빼는 사건들엔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다. ‘고추 말리는 활주로’로 알려진 무안공항은 김대중 정부 때 호남 정치권 요구로 세워졌다. 참사의 직접 원인인 콘크리트 둔덕은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방치했다는 정황들이 나오고 있다. 서해 사건 역시 문 정권의 친북 굴종 노선이 문제의 본질이다. 파헤칠수록 불리하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국가 부주의로 희생된 어떤 국민은 사후(死後)에도 차별받고 홀대당한다. 국민의 목숨마저 득실을 계산해 ‘가격표’를 매기는 민주당식(式) 정치가 비정하다.

[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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