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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22] ‘할머니 취미’ 따라 하기

조선일보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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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22] ‘할머니 취미’ 따라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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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취미(Grandmacore)’ 중 대표적인 빵굽기. 반죽이 부풀고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난 후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의 냄새를 맡는 감회는 완벽의 강박을 초월한 성취감을 부여한다.

‘할머니의 취미(Grandmacore)’ 중 대표적인 빵굽기. 반죽이 부풀고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난 후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의 냄새를 맡는 감회는 완벽의 강박을 초월한 성취감을 부여한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할머니 취미(Grandmacore)’라는 것이 유행이다. 화초 가꾸기, 뜨개질, 과자 굽기, 잼이나 피클 만들기, 손 편지 쓰기 등 주로 할머니들이 소일 삼아 즐기던 활동을 따라 하는 것이다. 할머니 서랍 속 물건들에서 느껴지는 편안하고 포근한 향수, 그리고 따뜻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유행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 본질은 직물이나 흙, 밀가루 등을 만지며 재료의 물성을 느끼는 순간의 행복에 있다. 순간에 집중하며 예측 가능한 리듬에 따라 단순한 행동을 천천히 반복하는 게 신체에 건강한 신호를 전달한다. 집중과 인내를 배울 수 있고 창의력도 높아진다. 그 결과물은 어설프더라도 자신이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무언가의 탄생이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아 한 줄의 직물을 완성하고, 반죽이 부풀고 식물이 자라기를 기다린 끝에 갓 구운 빵 냄새를 맡거나 잘 자란 토마토를 따는 순간의 감회는 완벽주의의 강박을 초월한 성취감을 선사한다.

할 일이 산재해 있고 생산적이고 결과가 보이는 일이 우선순위다 보니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빠져들어 걱정 없이 편안한 상태가 오래간다. 명상으로 건너가는 경험은 덤이다.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는 기분 좋은 습관이자, 죄책감 없이 취할 수 있는 허가받은 휴식이다. 기분이 좋아져 밤에 잠도 잘 온다. 실제로 주변에서 바쁜 일과를 보내는 전문직 지인들이 이런 취미를 시작하는 걸 종종 본다. 백화점에도 이와 관련된 상품 진열 코너를 늘리고 있다.

촌스럽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새롭게 그 가치를 조명받는 건 첨단인 척하는 미니멀리즘에 지친 반작용이다. 그리고 틱톡 등에서 분출되는 숏폼의 빠른 소비에 대한 식상함과 피로함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젊은 세대답게 이런 아날로그 취미를 배울 때도 유튜브 영상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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