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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계에 담은 시간과 기억…신원경 첫 시집 '축소모형'

이데일리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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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계에 담은 시간과 기억…신원경 첫 시집 '축소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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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발휘한 시 59편 수록
빛·어둠,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버튼을 눌러 확인해봐 / 네가 살았던 마을의 지형도를 / 나의 마을은 어느 날에는 식민지였으며 / 어느 날에는 잘 다듬어진 공원이 된다”(‘축소모형’ 中)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신원경의 첫 시집 ‘축소모형’이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는 신원경 특유의 상상력으로 써 내려간 시 59편이 총 5부에 걸쳐 수록됐다. ‘축소모형’은 시인이 구축해 온 ‘작은 세계’를 한 권의 시집으로 집약한 결과물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온 이 세계에 ‘축소모형’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글자로 빚은 해와 구름, 마을과 얼굴들을 통해 삶의 단면을 재구성한다.


시집의 중심에는 ‘모형’이라는 개념이 놓여 있다. ‘축소모형’의 세계는 오래된 건조물의 입체 모델처럼 과거를 본뜨는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조망하는 디오라마(특정 장면이나 공간을 입체적으로 재현한 모형)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대표작 ‘축소모형’에서 박물관 한가운데 놓인 모형은 ‘마을의 연대기’를 끌어안고, 버튼 하나로 과거와 미래의 단면을 번갈아 밝힌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모형 중앙에는/ 비석 하나가 놓여 있다”는 구절처럼 시인은 역사와 기억, 사라진 얼굴들을 작은 구조물 안에 켜켜이 겹쳐 놓는다.

시집에서 빛과 어둠은 중요한 상징이다. 시 속의 ‘나’와 ‘너’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환한 빛 속에서는 쉽게 닿지 못한다. 그래서 시는 그림자와 어둠 속에서 비로소 서로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관계를 그려낸다. ‘굴절률’에서 화자가 “빛을/ 옮길 수 있는/ 그런 유리”가 되고자 하는 것도 붙잡는 손길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타자에게 다가가려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축소모형’은 비극보다 다정함에 가까운 시집이다. 시 속 인물들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 머무는 선택을 한다. 흐릿한 돌과 얼룩진 유리문 같은 이미지는 이러한 관계의 방식을 상징한다.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해 기억과 관계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이 시집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