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성기를 보내며…
1980년 봄 광화문 다방에서 인사… 영화계 새 기운 넣을 연기자 직감
연이은 화제작으로 대중적 인기… 1990년대 ‘국민 배우’ 호칭 얻어
수많은 작품 속에 형의 세월 담겨… 함께하여 즐겁고 든든했고 고마워
1980년 봄 광화문 다방에서 인사… 영화계 새 기운 넣을 연기자 직감
연이은 화제작으로 대중적 인기… 1990년대 ‘국민 배우’ 호칭 얻어
수많은 작품 속에 형의 세월 담겨… 함께하여 즐겁고 든든했고 고마워
2006년 10월 부산에서 열렸던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 고인은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배우의 길을 계속 가는 것”이라며 “후배들에게 ‘너희도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뉴시스 |
배창호 영화감독 |
예상은 적중하여 안 형은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시작으로 ‘만다라’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등 연이은 화제작을 내놓아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으며 영화계와 평론계에 연기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확인시켰습니다. 그즈음 안 형의 수유리 집에 자주 놀러가 영화에 대해, 연기에 대해 토론했고, 촬영이 끝나면 맥주잔을 함께 기울이며 같이 할 다음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리 집으로 불쑥 찾아온 안 형이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유명 커피의 광고 모델 제의를 받아 이를 수락하면 영화에 대한 자신의 열정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고 일을 수락하면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져 출연작 선택에 신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 조언을 받아들인 안 형은 오랫동안 그 광고 하나에만 출연하여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 주었지요.
1990년대에 안 형은 ‘국민 배우’라는 호칭을 얻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호칭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그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자로서 자리매김하였고 성실한 연기자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안 형에게 노역을 부탁했던 ‘흑수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13편의 작품을 함께 하였습니다. 3년 전 투병 중임에도 내 특별전에는 “꼭 참석해야 한다”면서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 투병 소식을 꿋꿋이 전했던 안 형. 미국에서 올 로케이션했던 ‘깊고 푸른 밤’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기뿐 아니라 운전기사까지 하면서 촬영 팀을 도왔다”고 밝혀 관객들을 미소 짓게 하였지요.
1989년 영화 ‘개그맨’에 함께 출연한 배창호 감독(오른쪽)과 고인.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
중국집 배달부 역을 맡은 ‘바람 불어 좋은 날’ 첫 촬영을 끝내고 숙소에서 같이 자던 날 밤. 배달 가는 장면인데 트레이닝 뒷주머니에 젓가락을 꽂지 않았다고 남몰래 자책하던 모습. ‘고래사냥’의 허름한 의상을 동대문시장의 구제품 가게에서 1000원에 사 인물의 성격에 맞게 밤새 안주머니를 직접 달던 안 형의 모습. 정말 엊그제 같은데 그 세월이 어디로 간 것입니까.
바로 얼마 전, 안 형의 회고전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이 상영되어 내가 좋아하는 안 형의 클로즈업을 오랜만에 바라보았습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힘없이 도시를 배회하던 클로즈업―허공을 흘깃 올려다보며 말없이 걸어가던 우수에 찬 선량한 눈빛과 어떤 역할에도 인간애를 느끼게 해주었던 배우는 당분간 없을 것 같습니다.
안 형의 지난 세월은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라 주옥 같은 작품들, 관객들을 웃고 울게 해주었던 그 많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안 형, 그동안 함께하여 즐거웠고 든든했고 고마웠습니다.
한국 영화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유니세프 홍보대사와 신영균문화예술재단 이사장으로 이웃을 위해 많이 애쓰셨으니 이제 하늘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유가족 여러분께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배창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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