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 미국 알래스카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앵커리지/AP 연합뉴스 |
미국이 남미의 대표적인 ‘친러시아 국가’인 베네수엘라를 침공하자 러시아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지 않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4일(현지시각)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그들(미국)에겐 러시아를 비판할 형식적인 구실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전날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 생포는 국제법 위반이며, 따라서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불법적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
이어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현 미국 행정부의 진짜 목적은 (마약 밀매 소탕이 아닌)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다른 광물 자원을 차지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와 그의 팀(내각)은 정치적 시각에서는 라틴아메리카를 미국의 뒷마당으로 인식하며, 경제적으로는 ‘석유와 천연자원을 내놓으라’는 논리로 자국의 이익을 내세워왔다”고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공격의 이유로 ‘마약 밀매 근절’ 등을 내세워왔지만, 베네수엘라의 자원을 통제하려는 속내라는 주장이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또 미국의 이번 공격으로 중남미 여러 나라가 “미국에 대해 품는 증오를 더욱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합병하려는 욕심을 드러내는 점을 들며 “미국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나라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르몽드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특사로 미국 쪽과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 협상을 주도해온 키릴 드미트리예프 역시 전날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 직후 “그들의 가짜 가치들이 세일에 들어갔다”고 비꼰 바 있다. 러시아 외무부도 “미국의 침략을 정당화할 명분은 없다”고 비난을 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해온 미국이 다른 나라를 선제 공격하는 건 표리부동 하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날선 반응을 보이는 건 베네수엘라가 남미 지역에서 러시아의 핵심 우방국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이어 남미 국가 중 뚜렷하게 반미 노선을 보여온 마두로 정권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지난해 두 나라는 10년 간의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맺어 안보 등에서 협력하기로 했고, 두 나라 국영 석유회사가 15년짜리 합작 투자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의 유전 개발 등을 지원하고 베네수엘라는 러시아산 무기를 대량 구매하는 식이었다.
르몽드는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에서 나오는 부를 흡수하고 (원유) 공급을 늘려 국제 유가를 하락시키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소모전과 국제 제재로 이미 타격을 입은 러시아 경제에 큰 고통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러시아는 미국이 자신의 동맹국을 상대로 막강한 군사적 역량을 과시한 점도 불편하다. 러시아는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를 2022년 침공한 이후 4년째 전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반면, 미국은 카리브해 너머 베네수엘라를 항공기·특수부대 등으로 공격해 몇시간 만에 지도자를 제거한 셈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는 러시아 정부가 제공한 S-300 대공 방어 시스템이 깔려 있었지만, 저공 비행 등으로 레이더를 피한 미군 항공기를 한 대도 격추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푸틴 대통령을 향해 “전쟁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날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매달 2만5000∼3만명의 병사들이 죽고있다. 나는 이것을 멈추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미국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푸틴 대통령에게 화가 났는지 묻는 기자 질문에 “푸틴에 대해 신나지는 않는다. 그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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