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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전설' 박주봉 감독의 진단... "지금 바꾸지 않으면 황금기 오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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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전설' 박주봉 감독의 진단... "지금 바꾸지 않으면 황금기 오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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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봉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 인터뷰]
"유종의 미 거뒀지만, 풀어야 할 숙제 산더미"
4월 부임 후 대표팀 체계 바꾸고 훈련 강도 ↑
"합숙훈련 전 운동 안 하면 못 따라올 것" 경고
내년부터 대표팀 선발 시스템도 변화 예고...
"선발전에 혼복 추가하고, 주니어 합류 논의"


박주봉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5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선수들에게 지시사항을 전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박주봉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5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선수들에게 지시사항을 전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2025년은 한국 배드민턴 역사에 굵직한 이정표를 세운 기념비적인 해다.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삼성생명)이 연말 왕중왕전 성격의 대회에서 역대 단식 선수 최고 승률(94.8%)로 남녀 통합 한 시즌 최다 우승(11회)과 타이를 이루며 '셔틀콕 제왕'으로 우뚝 섰다. 여기에 한동안 침체됐던 남녀 복식까지 세계 정상에 오르며 한국 배드민턴의 '부활'을 알렸다.

박주봉(맨 오른쪽)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21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파이널스 2025에서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한 안세영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박주봉(맨 오른쪽)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21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파이널스 2025에서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한 안세영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하지만 축제의 기쁨도 잠시. 박주봉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은 귀국 이틀 만에 곧바로 경북 상주로 내려가 대표팀 선발전을 지켜보며 냉정한 현실과 마주했다. 박 감독은 25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긴 했지만, 일부 선수들이 잘한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상황은 아니다"며 "내부를 들여다보면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진단했다.

박주봉(오른쪽)이 남자 복식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문수와 함께 대회를 치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주봉(오른쪽)이 남자 복식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문수와 함께 대회를 치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주봉 주스' '주봉 버거' 열풍 일으킨 배드민턴 '전설'


지난 4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배드민턴계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데 이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혼합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드민턴이 1992년에야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고, 박 감독이 1996년 완전히 선수 생활을 은퇴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올림픽 메달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실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이름을 일찌감치 세계에 알렸다. 1982년 덴마크 오픈 복식 우승을 시작으로 10년간 세계 복식 무대를 석권했고, 세계선수권 5회, 아시안게임 3회, 전영오픈 9회 등 국제 대회 최다 우승(72회)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선수 시절 인기는 대단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배드민턴이 국기(國技)와 다름없는 국가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는데, 그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장 주변에선 '주봉 주스' '주봉 버거' '주봉 아이스크림'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정도였다. 은퇴 후에도 여러 나라에서 지도자 제의가 쏟아졌다. 영국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를 거쳐 2004년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후 20년간 아시아 중·하위권이었던 일본 배드민턴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리며 '스타 선수는 명장이 될 수 없다'는 통념을 깨뜨렸다.

박주봉(오른쪽)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21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파이널스 2025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박주봉(오른쪽)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21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파이널스 2025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선수들 기량 차 줄이려 훈련 체계 바꾸고 강도 높여


해외에서의 오랜 지도자 생활을 마치고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박 감독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건 대표팀 내 전력 불균형이었다. 안세영, 서승재-김원호(이상 삼성화재) 등 세계 최정상급 선수가 있었지만, 그 뒤를 받칠 허리 자원의 기량 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판단이었다. 박 감독은 "중간 역할을 해줄 선수층이 얇다"면서 "지금처럼 특정 선수 의존도가 높으면, 이들 은퇴 이후 세대교체 과정에서 큰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대표팀 훈련 체계부터 바꿨다. 코치를 기존 7명에서 9명으로 늘려 세부 종목별로 상위권과 중·하위권 선수를 나눠 담당하는 '책임제 훈련'을 도입했다. 코치들이 담당 선수들의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게 한 뒤 책임 지고 성적을 끌어올리도록 하는 구조다. 이 경우 상위권 선수들이 코치와 함께 국제 대회에 출전하더라도, 중·하위권 선수들이 훈련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박 감독은 "장기적으로는 각 종목별로 2명씩 총 10명 이상으로 코치진을 꾸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주봉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 대한 배드민턴협회 제공

박주봉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 대한 배드민턴협회 제공


훈련 강도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현재 진천선수촌 합숙 훈련은 소속팀에서 충분히 몸을 만들어오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박 감독은 "시간만 때우는 훈련은 하지 않는다"며 "'왜 이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이렇게 했을 때 내가 뭘 얻을 수 있는지' 선수 스스로 느끼게 하고 싶다. 그래야 선수들도 자발적으로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내년 1월 합숙 훈련은 한층 더 강도 높은 프로그램이 예고돼 있다. 그는 "4월 취임 이후 매번 '소속팀 돌아가서도 훈련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여전히 휴식만 취하다 오는 선수들이 있다"며 "준비 없이 선수촌에 들어오면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느끼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봉 대한민국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감독이 22일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으로 2025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파이널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박주봉 대한민국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감독이 22일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으로 2025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파이널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단기간 소기의 성과 달성... 선발전도 내년부터 달라질 것


짧은 기간이었지만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부임 후 9개월 만에 최상위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가 늘었다. 남자 복식이 1개 팀에서 3개 팀으로 늘었고, 여자 복식은 2개 팀에서 3개 팀으로 확대됐다. 여자 단식 역시 안세영 1명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3명으로 늘었다. 다만 남자 단식은 여전히 최상위 대회에 내세울 자원이 없는 상황이다.

박 감독은 향후 대표팀 선발전에도 변화를 줄 방침이다. 우선 내년 선발전부터는 혼합복식을 선발 종목에 추가할 계획이다. 현재 혼합복식은 따로 선발전을 거치지 않는다. 박 감독은 "우리나라 혼합복식은 사실상 아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선발전에 혼합복식을 포함시켜야 전문 선수를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와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자를 대표팀에 자동 선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어린 유망주들이 대표팀에 합류해 일찍부터 다양한 국제대회를 경험하며 경쟁력과 랭킹 포인트를 쌓도록 하자는 포석이다. 박 감독은 "하루아침에 이 모든 게 다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들을 차근차근 이뤄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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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