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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직업이 공동 대표’ 박석운, 정권의 완장 차다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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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직업이 공동 대표’ 박석운, 정권의 완장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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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진영 안에서도
가장 강성인 인물을
공직에 끌어 들였다…
이렇게까지 위험하고
편향된 인사를 강행한
정권은 역대 없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야5당·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연석회의에서 박석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야5당·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연석회의에서 박석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뉴스1


이재명 대통령의 ‘생중계 국정’은 흥행에 성공했지만, 종종 현실과 동떨어진 ‘사오정류(流)’ 인식을 드러내 논란을 빚곤 했다. 인사(人事) 관련 발언이 그랬다. 17일 업무 보고에서 그는 “제가 정치적 색깔을 이유로 누구를 비난하거나 불이익을 줬나”라고 했다. 불과 며칠 전, 야당 출신 공기업 사장을 망신 주며 몰아세웠던 것을 잊은 듯했다. “유능하면 어느 쪽에서 왔든 상관없이 쓰고 있지 않나”라고도 했다. 법까지 만들어 앞 정부가 임명한 방통위원장을 쫓아낸 것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진영 초월의 균형 인사를 한다는 대통령의 자부심은 실상과 차이가 컸다. 1기 이재명 내각 중 총리와 국방·법무·행안부 등 8개 부처 장관이 민주당 정치인이었다. 천안함 음모론을 주장한 전교조 출신이 교육 장관에, 북의 3대 세습을 옹호한 전 민노총 위원장이 노동 장관에 기용됐다. 아마 대통령은 몇몇 경제 부처 장관에 관료·기업인을 앉힌 것을 어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재부에선 예산을, 산업부에선 에너지 업무를 떼어내 힘을 빼고는 여당 정치인이 장(長)인 총리실·환경부에 갖다 붙였다.

이 대통령의 인사는 사적(私的) 인연이 작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사법연수원 동기 7명을 장·차관급 고위직에 임명했다. 금융 비전문가를 금감원장에, 외교 문외한을 유엔 대사에 보냈다. 자신의 형사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인들도 대거 공직에 앉혔다. 5명에게 공천을 줘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했고, 대통령실 민정·법무·공직기강 라인과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을 개인 변호인들로 채웠다. 세금으로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비판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떤 기준으로도 균형 인사라 하긴 힘들었다.

지난주 총리실 산하에 ‘사회 대개혁위원회’란 이름의 조직이 출범했다. 개혁 과제를 제안할 비상설 자문 기구란 설명이 따랐는데, 구성원 면면이 심상치 않았다. 대통령령(令)에 따라 설립된 정부 공식 기구였다. 하지만 위원은 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과 민변·경실련·환경운동연합·시국회의·진보대학생넷·민언련·민교협·민족문제연구소 같은 친여·좌파 단체 출신 일색이었다. 야당이나 보수 쪽 인사는 한 명도 없었다. 아예 참여할지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대개혁위’ 위원엔 사드 반대 시위를 주도한 농민단체 대표, 후쿠시마 오염수 투쟁을 벌인 운동가, 이석기 석방 운동을 한 단체 대표 등이 이름을 올렸다. “미국의 동맹 수탈 종식”을 외친 반미 단체 간부도 있었다. 민간 위원 47명 중 23명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인사였다. 공적(公的) 기구라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대표성조차 없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을 지지한 ‘광장연대’ 소속이란 점이었다. 자기편 인물로 채운 편향적 기구에서 국가 과제를 자문받아 국정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국민 세금을 이렇게 써도 되나.

그중에서도 기가 막힌 것이 위원장을 맡긴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였다. 그가 16년째 이끌고 있는 한국진보연대는 좌파 내에서도 왼쪽에 치우친 NL(민족해방) 계열 단체다. 2007년 광우병 시위를 주도한 핵심이었고, 줄곧 반정부 투쟁의 전면에 서왔다. 이 단체의 극단성은 한미동맹 폐지, 주한미군 철수, 정전협정 폐기, 국정원·기무사 철폐, 이적단체 활동 보장 같은 강령에 나타나 있다. 이런 친북·반미 단체의 대표를 정부 위원회의 장(長)에 앉히면서 ‘균형 인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 위원장은 좌파 운동권의 ‘사무총장’과도 같은 사람이다. 온갖 시위를 도맡아 주도하며 선봉대 역할을 해왔다. 미선·효순양 사건부터 밀양송전탑·한미FTA·광우병·제주해군기지·세월호·백남기·사드·후쿠시마·이태원·전장연, 트럼프 방한 반대까지, 집회 현장 어디에서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그는 ‘직업이 공동 대표’로 불렸다. 사회 운동에 몸을 던진 1980년대 중반 이후, 대표를 맡았던 단체만 해도 족히 100개를 넘겼다.

그렇게 40년간 재야의 온갖 직책을 도맡았지만 정부 공직을 맡은 적은 없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도 이렇게 이념 과잉인 인물을 데려다 쓸 생각은 차마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용과 ‘먹사니즘’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금기를 깼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6년 성남의료원의 초대 상임이사로 박 위원장을 영입하면서 인연을 맺은 뒤 유대 관계를 이어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 같은 시위 무대에 야당 대표이던 이 대통령과 박 위원장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

2년 전 이 대통령이 단식 후 인근 병원을 마다하고 찾아가 입원한 곳도 박 위원장이 상임이사로 있는 중랑구 녹색병원이었다. 급기야 위원장이란 완장을 채워주며 좌파 운동권 내에서도 가장 강성인 인물을 공적 영역에 끌어들였다. 이렇게까지 편향되고 위험한 인사를 감행했던 정권은 역대 본 적이 없다.

[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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