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겁 없는 자들은 읽지 말 것…죄책감도, 내일도 없이 [.txt]

한겨레
원문보기

겁 없는 자들은 읽지 말 것…죄책감도, 내일도 없이 [.txt]

서울맑음 / -3.9 °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반타(2025)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반타(2025)


이제 일본의 장르 소설이 예전만큼 한국에서 널리 읽히지는 않지만, 올해 눈길을 끈 작품이 있었다. 세스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이하 ‘긴키 지방’)라는 호러 소설이다. 영화로도 나온 이 작품은 온라인상의 괴담과 특정 지역의 괴담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조합했다는 특징이 있다. 결말을 두고서는 평이 갈리지만, 제보 잡지 기사나 라이브 스트리밍, 에스엔에스(SNS) 게시물의 형식을 따르면서, 호러 장르의 구전적 성격을 부각한 점이 흥미롭다.



작가의 신작인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이하 ‘성지 순례’)도 현대 괴담의 인터넷 콘텐츠다운 성격을 적극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다만 전작에 비해,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강화되면서 기존 소설에 좀 더 가까운 형식이 되었다. 이 작품에는 과거 가십 주간지에서 일했던 프리랜서 편집자, 괴담 작가, 오컬트 현상 전문 유튜버가 등장한다. 이들은 으스스한 소문이 있는 오두막, 폐병원, 폐호텔에 관한 이야기와 머리만 기이하게 큰 “풍선남”, 이상한 전화에 대한 목격담을 수집해서 상업적으로 이용할 계획을 꾸민다.



‘긴키 지방’과 ‘성지 순례’ 둘 다 불길한 전율을 전달하면서 독자를 홀리지만, 한편으로는 지역 민담과 도시 괴담이 제작, 유통, 판매되는 과정을 진지하게 파헤치려 한다. 특히 ‘성지 순례’에 이르면 인물 각각의 사연이 부각되면서, 공포의 사회심리적 배경을 탐구하려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호러 소설이 형식을 갖출수록, 괴담 마니아들이 실망할 확률은 높아진다. 공포는 원래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임시라고 해도 결말이 있는 설명을 제공하면, 괴담은 소설로 ‘진화’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공포로 도파민을 채우려는 괴담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결말을 주지 못한다. 엠비시(MBC)의 공포 프로그램 ‘심야괴담회’가 시즌 5까지 지속하고, 괴담 유튜브들이 성행하는 이유는 이들이 완벽한 스토리텔링을 추구할 필요는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겁 많은 공포 애호가인 필자는 ‘성지 순례’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셋은 모두 타인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우연히 잘못 발을 들인 곳에서 내게 들러붙어 어디든 따라오는 존재. 죄책감의 성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작품 속의 로쿠부 설화에서처럼, 죄책감은 내 잘못이 환생한 형태이다. 이 유령은 어둠 속에서, 혹은 혼자 있을 때, 불쑥 모습을 드러내어 사람을 삼켜버린다. 그렇지만 자기 잘못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죄책감을 느끼기에 이 감정은 인간에게 양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12월 긴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떤 죄책감과 싸우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들여다보진 말길, “이젠 네 차례야”라는 심연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도 귀 기울이지 말기를. 공포 이야기의 기능은 모두에게 죄업을 물어 어둠으로 끌고 가는 데 있지 않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죄책감을 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제 묵은해와 함께 과거의 유령을 모두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윤석열? 김건희? 내란사태 최악의 빌런은 누구 ▶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