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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남자의 물건] [21] 단추로 깃을 고정하는 우아한 ‘가을 셔츠’

조선일보 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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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남자의 물건] [21] 단추로 깃을 고정하는 우아한 ‘가을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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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셔츠
뉴욕의 어느 직장인. 옥스퍼드 셔츠는 노 타이 차림이어도 출근 복장으로 손색이 없다@핀터레스트.

뉴욕의 어느 직장인. 옥스퍼드 셔츠는 노 타이 차림이어도 출근 복장으로 손색이 없다@핀터레스트.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고 싶은 가을이다. 아침저녁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길고도 길었던 여름이 멀어진다. 청명한 하늘과 불어오는 바람이 반갑고 가끔 내리는 가을비도 운치 있다. 괜스레 따뜻해지고 싶고 이유 없이 마음 한쪽이 아련해지는 날.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듯이 손이 가는 옷이 바로 옥스퍼드 셔츠다.

정식 명칭은 OCBD(Oxford Cloth Button-Down Shirt). 미국의 브룩스 브러더스사가 1900년에 처음 출시한 이후 오늘날 거의 모든 브랜드가 선보이는 기본적인 셔츠 디자인이다. 1896년 영국에서 폴로 경기를 보던 브룩스 브러더스의 임원은, 칼라(collar·깃)가 펄럭이지 않도록 단추로 고정한 선수들의 운동복에 매료됐다. 미국에 돌아와 기존 드레스 셔츠보다 두껍고 튼튼한 원단에 칼라를 단추로 고정할 수 있는 새로운 셔츠를 선보이며 역사가 시작됐다.

궁극의 조합인 카키색 치노팬츠에 흰색 옥스퍼드 셔츠를 입은 폴 뉴먼@apetogentleman

궁극의 조합인 카키색 치노팬츠에 흰색 옥스퍼드 셔츠를 입은 폴 뉴먼@apetogentleman


이름에 ‘옥스퍼드’가 들어가는 것은 이 원단을 개발한 스코틀랜드의 직물 업체가 자신들의 제품에 유명 대학 이름을 붙여 판매한 데서 유래했다. 운명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상류층을 위한 고급 운동복으로 내놓은 셔츠는 반세기가 흐른 1950년대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즐겨 입기 시작하며 대중화가 됐다. 또한 당시 ‘아이돌’인 마일스 데이비스 등 재즈 뮤지션들도 가세하면서 196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옥스퍼드 셔츠는 타이를 한 정장 차림과도 굉장히 잘 어울린다@핀터레스트.

옥스퍼드 셔츠는 타이를 한 정장 차림과도 굉장히 잘 어울린다@핀터레스트.


옥스퍼드 셔츠의 가장 큰 매력은 범용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구김이 진 채로 편하게 입어도 되고, 잘 다려 바지 안에 넣어 입으면 비즈니스 미팅에서도 손색없는 단정한 복장이 된다. 넥타이와 재킷과 함께하면 결혼식과 면접 자리에도 충분하고, 노타이 차림에 반바지와 함께 걸치면 멋진 주말 나들이 차림이다. 체형을 감추면서도 활동성을 살려주는 여유로운 핏의 자유분방함과 버튼으로 고정하며 생기는 칼라의 우아한 남성미는 청춘부터 노년까지 남자라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다채로운 매력을 담고 있다. 그러니 남자의 기본인 흰색 옥스퍼드 셔츠와 함께 자신만의 가을 풍경을 담은 색의 옥스퍼드 셔츠를 한 장 더 골라보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입은 초록색도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고 고백한 1993년 한석규의 노란색도 좋다. 다행히 가격 차이만큼 품질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은 고마운 품목이기도 하다.

직업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어울리는 옷. 계절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옷. 덕분에 옥스퍼드 셔츠는 가을의 전설이 되어 120년이 넘도록 남자의 옷장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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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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