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8일 개봉 ‘트론’의 그레타 리
영화 '트론: 아레스'에서 주연을 맡은 그레타 리. /뉴스1 |
가수 비의 미국 진출작 ‘닌자 어쌔신’(2009) 이후 한국인이나 한국계 배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주연을 맡은 사례는 없었다. ‘지 아이 조’의 이병헌이나 ‘이터널스’의 마동석 역시 비중 있는 조연에 머물렀다.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42)가 또 한 번 견고했던 할리우드의 벽을 깼다.
셀린 송 감독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레타 리가 SF 액션 영화 ‘트론: 아레스’(다음 달 8일 개봉)의 주연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15일 간담회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으로 한국을 찾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연기를 하며 할리우드의 변화를 목격해 왔습니다. 블록버스터에 한국계 주인공이 등장했다는 건 희망적인 일이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겁니다.”
영화 '트론: 아레스'에서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 이브 킴(그레타 리)은 인류의 운명을 바꾸게 될 기술을 발견한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트론: 아레스’는 인공지능(AI) 병기 아레스(재러드 레토)가 가상 세계에서 현실로 넘어오면서 위기가 벌어지는 SF 액션 블록버스터다. 영화에서 그레타 리는 IT 회사 엔컴 대표이자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 이브 킴 역으로 재러드 레토와 공동 주연을 맡았다. 로맨스 영화였던 ‘패스트 라이브즈’와 달리 거친 액션 장면이 많았다. 그는 “하도 뛰어서 당장 올림픽에 출전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매번 촬영마다 목숨이 걸린 듯 전력을 다해야 했거든요. 선수들도 죽기 살기로 뛰는 훈련을 스무 번씩 반복하진 않을 거예요.”
이번 작품은 ‘트론’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다. 1982년 개봉한 1편은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3D 컴퓨터 그래픽(CG)을 대규모로 활용해 주목받았다. 형광빛 색채와 기하학적 공간, 인간이 디지털 세계로 들어간다는 설정은 이후 수많은 SF 영화·게임에 영향을 미쳤다. 2010년 ‘트론: 새로운 시작’으로 부활한 후, 15년 만에 속편이 나왔다. 그레타 리는 “1편이 개봉했을 때는 컴퓨터로 만든 특수 효과가 ‘반칙’으로 여겨져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면서 “이번 영화도 지금껏 본 적 없는 비주얼로 가득하다. 또 다른 기술적 진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트론: 아레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그레타 리는 2006년 ‘로 앤 오더: 성범죄 전담반’으로 TV 드라마에 데뷔했다. 이후 연극·드라마·영화를 오가며 개성 있는 조연으로 인정받았지만, 주연을 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작품이든 한국인,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한 인간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해요. ‘패스트 라이브즈’의 노라 역이든, ‘트론: 아레스’의 이브 킴이든 캐릭터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게 배우로서 목표입니다.”
그는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한 한국인 부모 아래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미군 기지에서 영화 광고판 그리는 일을 했었다. 리는 영화광이었던 할아버지를 통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고전 영화를 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그레타 리는 영어로 말했지만 거듭해서 자신을 ‘한국인’이라 불렀다. “한국인들은 우리가 최고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잖아요. 이제야 세상이 알게 된 것뿐이죠. 음악·패션·미술·영화 가릴 것 없이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기쁩니다. 한국 문화의 인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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