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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장차현실, 아름다운 투사가 되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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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장차현실, 아름다운 투사가 되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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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현실 화백이 8월22일 오후 경기 양평군 강상면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에서 ‘은혜야, 살자’ 팝업북을 들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장차현실 화백이 8월22일 오후 경기 양평군 강상면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에서 ‘은혜야, 살자’ 팝업북을 들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여보오오!!!”



지난달 22일 오후, 경기 양평군 강상면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 전시장에서 발달장애인 화가 겸 배우 겸 아트센터 대표인 정은혜 작가가 남편 조영남 작가를 불렀다. 지난 5월 결혼한 두 사람은 최근 꽤 시청률이 높은 부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대국민 염장 커플’로 등극했다. 이를 계기로 아트센터에서 두 작가의 ‘부부전’이 열렸다.



사진기자의 큰 키에 감탄하고 있던 영남 작가는 배우자의 부름에 냉큼 커피머신 앞으로 가서 “은혜씨 꼬신 영남씨 커피”를 내려 손님들을 접대했다. 전시장 관람객들은 은혜 작가의 정성스러운 사인을 받아 들곤 “마치 작품 같다”며 기뻐했다. 전시장엔 장애인 화가 부부의 그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팬이 연필로 그려 보낸 은혜 작가의 초상화도 함께 걸려 있었다. 은혜 작가가 출연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2022)가 넷플릭스에 실리며 각국에서 응원이 답지한다.



정은혜 작가(오른쪽)가 8월22일 오후 경기 양평군 강상면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에게 사인을 해주자 관람객이 “너무 작품 같은 사인”이라며 감탄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정은혜 작가(오른쪽)가 8월22일 오후 경기 양평군 강상면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에게 사인을 해주자 관람객이 “너무 작품 같은 사인”이라며 감탄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왼쪽부터 사위 조영남, 딸 정은혜, 엄마 장차현실, 아빠 서동일. 신혼부부들이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자 부모들도 용기를 내보았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왼쪽부터 사위 조영남, 딸 정은혜, 엄마 장차현실, 아빠 서동일. 신혼부부들이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자 부모들도 용기를 내보았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지난해 은혜 작가는 40살 이하 젊은 혁신가를 위해 제정한 ‘포니정 영리더상’을 받았다. 그때 받은 상금 5천만원이 지금 은혜 작가 부부와 동료들이 함께 근무하는 아트센터 설립의 종잣돈이 되었다. 건물을 빌리기 위해 다른 부모들이 필요한 나머지 돈을 채워 넣었고, 14명의 장애인 화가들이 입주했다.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티셔츠나 엽서 등 아트상품도 제작해서 판매한다.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상상을 못 했어요.”



장차현실 화백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유명한 만화가였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시사만화계에 흔치 않은 여성 작가로, 1990년대 말부터 한겨레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등 여러 언론에 만화를 연재했다. 1990년 26살에 발달장애를 가진 딸을 낳은 그는 몇년 뒤 한부모 가장이 되었다. 그의 만화엔 장애아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맞서서 두 눈에 불을 켜고 팔뚝을 걷어붙이는 씩씩한 엄마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마감에 쫓기고, 엄마 노릇에 시달렸다. 외로움이 밀려와 풀이 죽어 있을 때 엄마를 보고 은혜는 말했다.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어느 날, 장차현실 화백보다 여덟살 어린 서동일 감독이 모녀를 찾아왔고 식구가 되었다. 은혜에겐 아빠가 생겼고 2005년 5월, 은혜의 동생이 선물처럼 태어났다. 장차현실 화백은 평등하게 가사를 분담하기 위해 집에서 싸우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를 개선하려고 만화를 그렸다.



서른이 넘어 은혜 작가는 유명인이 됐다. 2017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 뉴욕 등 국내외에서 수십차례 단체전과 개인전을 치렀다. 배우로도 데뷔했다. 그를 드라마에 캐스팅한 노희경 작가는 “은혜를 만나면 무거웠던 머리가 맑아졌다”고 했다. 은혜 작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니 얼굴’(2022)은 아빠 서 감독이 만들었다. 구독자 29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니 얼굴-은혜씨’를 만드는 서은백씨는 은혜 작가의 동생이다. 아빠와 아들은 영상으로, 엄마와 딸은 그림으로 재능을 공유하는 셈이다.



장차현실 화백이 ‘은혜야, 살자’ 퍼포먼스용 팝업북을 펴놓고 섰다. 이 팝업북은 은혜 작가의 인생을 강의하는 퍼포먼스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뒤로 사위 조영남 작가의 그림들이 보인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장차현실 화백이 ‘은혜야, 살자’ 퍼포먼스용 팝업북을 펴놓고 섰다. 이 팝업북은 은혜 작가의 인생을 강의하는 퍼포먼스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뒤로 사위 조영남 작가의 그림들이 보인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딸이 전시회를 주로 하는 작가라면, 장차현실 화백은 책을 펴내는 쪽이었다.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2003), ‘작은여자 큰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2008), ‘또리네 집’(전 2권, 2015), ‘은혜씨 덕분입니다’(2023) 등의 책을 선보였다. 최근엔 딸의 30여년 인생을 담은 팝업북 ‘은혜야, 살자’(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를 발간했다. 책갈피를 넘기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은혜 작가와 가족이 겪은 삶의 이야기들이 입체적으로 나타난다. 은혜 작가의 삶에 대한 강의 요청을 받을 때 선보이려고 2020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팝업북의 줄거리를 엮으며 등장인물 캐릭터를 그린 건 장차현실 화백이고, 팝업북의 구조를 설계하면서 디자인하는 일은 20년간 팝업북을 연구하며 가르쳐온 홍승희 작가가 맡았다. 제작은 전문 출판사인 팝업북코리아와 삼성전자가 설립한 장애인표준사업장 희망별숲이 함께했다.



“정교한 가공이 들어가야 해서 제작 공정이 까다롭고 오류가 많이 나죠. 정확한 위치에 붙여야 하고 계산이 맞아야 하는데 잘못하면 제작비가 추가돼서 단가가 비싸져요. 고민이 많았죠. 책값이 5만9천원이나 되니까요. 하지만 아름답고 예술적이라면서 돈이 아깝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장애인들이 제작에 참여한 의미도 큽니다.”(홍승희)



장차현실 화백(왼쪽)이 홍승희 작가와 함께 자신이 만든 ‘은혜야, 살자’ 팝업북 모형의 책장을 넘기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장차현실 화백(왼쪽)이 홍승희 작가와 함께 자신이 만든 ‘은혜야, 살자’ 팝업북 모형의 책장을 넘기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팝업북은 모두 1천부를 찍었고 추가 인쇄할 예정이다. 장차현실 화백은 “5년 전부터 팝업북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들었다”고 말했다. 책에서 가장 갈등이 고조되는 대목은 행복했던 유년 시절과 학령기를 지나 동굴 속으로 들어간 은혜 작가를 표현한 부분이다. 공교육과 대안교육 모두를 포기하고 홈스쿨링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단절되자, 20대 때 딸에게 퇴행이 급격히 나타났다. 조현병이 찾아든 것이다. 딸 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장차현실 화백도 와르르 무너지면서 뇌졸중이 왔다. 어느 날, 딸이 상상 속 친구를 불러내 큰 소리를 냈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방문을 왈칵 열었던 엄마는 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바닥에 앉은 아이는 “몸이 마시멜로처럼 녹아버린 느낌”이었다고 했다.



“혼내러 갔다가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막 울었어요. 나의 사랑스럽고 예쁜 은혜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고 예뻤던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죽음을 기다리는 애 같은 거였어요.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그렇게 바닥을 치니까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나는 일이 생긴 거죠.”



2013년 2월27일, 드디어 반전의 날이 왔다. 용돈에 이끌려 방 밖으로 나와 엄마의 화실에서 겨우 청소만 하며 지내던 은혜가 결석한 아이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 드로잉은 평소 장차현실 화백이 좋아하던 화가 에곤 실레의 선을 닮아 있었다. 이후 그림은 은혜를 동굴에서 탈출시켰고, 식구들도 ‘화가 은혜’를 적극 지지했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족의 행복은 그 발달장애인이 어떤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장차현실)



‘나를 사랑스러운 딸로 태어나게 한 엄마 장차현실’(2018). 정은혜 작가 제공

‘나를 사랑스러운 딸로 태어나게 한 엄마 장차현실’(2018). 정은혜 작가 제공


2016년 3월부터 양평군 문호리 장터인 ‘리버마켓’에서 은혜 작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엄청난 지구력이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장애인 레지던시 입주 화가로 작업하면서 채색화를 그렸다. 불과 2년 만에 엄청난 그림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은혜 작가가 그린 얼굴 그림만 5천장을 헤아리고 대표작인 20호짜리 자화상 ‘니 얼굴 은혜씨’는 경매에 부쳐져 950만원에 팔렸다. 하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가족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나에게 뇌졸중이 오고, 은행 잔고는 최악이 되고 그러니까 답이 없었어요. 도움을 받아야겠다 싶어서 면사무소에 갔어요. 엄청난 서류를 쓰고 사인하게 했죠. 그 내용들이 ‘약자 증명서’ 같은 거였어요. 그러고는 글쎄 돈이 들어오는데, 딱 4만원이 찍혔어요.”



그 금액을 보고 장차현실 화백은 눈물을 흘렸다. “우리 삶이 끔찍해서 울었는데 나중엔 화가 나더라”고 했다.



“우리더러 죽으라는 얘기구나.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한달에 최소한 얼마는 있어야 될까? 4만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때 화가 나면서 싸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울음을 그치고 일어났다. 장애인 부모 운동을 시작했다. 2018년 4월2일 장차현실 화백은 다른 부모들과 함께 머리를 삭발하고 청와대 인근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다. 그는 현재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부 회장으로 일한다.



장차현실 화백(왼쪽)과 팝업북 아티스트 홍승희 작가, 그리고 정은혜 작가.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장차현실 화백(왼쪽)과 팝업북 아티스트 홍승희 작가, 그리고 정은혜 작가.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2018년 4월2일 서울에서 삭발한 뒤 은혜가 저를 그린 그림이 제일 좋아요. 힘이 빠져 앉아 있는 그림인데, 그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림 옆에 ‘나를 사랑스러운 딸로 태어나게 한 엄마 장차현실’이라고 썼어요.”



장차현실 화백은 다른 부모들과 함께 “눈에 독기를 뿜고” 싸웠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받는 보조금으로 장애인들을 위해 일자리 사업 등 1년에 25억원의 예산을 집행한다. 사실 은혜 작가와 동료들의 활동이 거둔 지자체 홍보 효과만 해도 상쇄되고 남는 금액이다. 예쁜 원피스에 웨이브 들어간 긴 머리를 자랑하던 ‘소녀풍’ 엄마 화가는 그렇게 단단하고 아름다운 투사가 되었다.



“내가 죽어도, 엄마 아빠가 없이도 장애인들이 국가의 지원으로 살다가 자연스럽게 죽는 것, 그게 이제 해야 할 일이죠. 지속되는 일자리가 필요하고 생활 전반을 챙겨주는 코디네이터 제도가 마련돼야 해요.”



가족은 올해 상반기에만 큰일을 여럿 치렀다. 올해 초 장차현실 화백은 뇌수술을 했다. 오래 방치했던 뇌졸중 후유증으로 반측성안면경련증이 왔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긴장했지만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봄엔 은혜 작가가 결혼을 하고,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사회연결망서비스와 유튜브를 통해 은혜-영남 커플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속속 공개됐다. 최근 두 사람이 2세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장애인의 사랑과 결혼, 출산과 양육 문제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은혜와 영남 커플 이야기가 나간 뒤 장애인 부모들에게 격려가 쏟아졌대요. 앞으로는 일자리를 더 만들고 전문적으로 그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고 해요. 저 또한 본격적인 설치 작업을 통해 우리 삶을 이야기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장차현실)



가족은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엄마 장차현실 화백은 지금까지 그랬듯 굳건한 활동가이자 타고난 스토리텔러 겸 미술가로서 다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정은혜’로 살던 딸은 아빠 서동일 감독의 성을 따라 ‘서은혜’가 되려고 한다. 영남 작가가 새 식구가 됐으니, 법적으로도 모두 한가족이 되기 위해서다. 팝업북이 출간된 소감을 묻자 은혜 작가는 고심하면서 차분하게 말을 골랐다.



“(책이) 재밌어요. 엄마가 팝업북을 만들어서 사람들 앞에서 과거의 제 인생 이야기를 강의하고, 사람들 반응이 좋아요. 책은 삶과 인생, 장애아를 성장시키는 엄마 이야기로, 감동적이었어요. 엄마도 나이가 있지만 힘들잖아요. 그래서 이해도 돼요. 엄마를 위로하면서 생각해야죠.”



※팝업북 구입처: 네이버 스토어 ‘어메이징아웃사이더아트센터’



https://smartstore.naver.com/amazingoutsiderartcenter/best?cp=1



장차현실 화백(왼쪽)과 홍승희 작가.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장차현실 화백(왼쪽)과 홍승희 작가.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정은혜 작가와 장차현실 화백.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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