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냅백
같은 스냅백이라도 크라운(머리를 감싸는 부분)이 낮은 스냅백은 트렌디하다. /핀터레스트 |
우리 사회에서 ‘영포티(젊은 40대)’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주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섹션에서도 다뤘듯 원래 영포티는 기존과 다른 중년 세대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용어였다. 특히나 문화적 취향을 향유하고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중년 남성의 출현을 주목했다. 그런데 ‘젊음’이란 무대 위에 오래 머무르려다 보니 뜻밖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지역과 남녀 갈등에 이어서 남성 사이의 세대 갈등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영포티 패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한때 큰 인기를 끈 아이템, 유명한 로고가 드러나는 브랜드를 2010년대 방식으로 입는다. 그래서 일자 챙의 뉴에라 모자, 슈프림이나 스투시의 티셔츠, 나이키 농구화 등 당시 유행한 스트리트 패션 아이템을 여전히 소비한다. 바지 밑단을 접어 입고, 맨발에 페이크삭스(덧신 모양 양말)를 신는 등 당시 새롭게 학습한 멋도 꾸준히 고수한다. 2010년대 중반 유행한 스냅백도 마찬가지다. ‘신도시 아재룩’부터 시작해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고 싶은 영포티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빈티지 패션이 유행하면서 스냅백의 전성기가 다시 돌아왔다. /snag |
그런데 오해부터 바로잡자. 스냅백이 일자 챙 모자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이름 그대로, 채울 때 ‘딸깍(snap)’ 소리가 나는 플라스틱 버튼이 뒤쪽에 달린 모자를 뜻한다. 그러니까 흔히 영포티 모자라 일컬어지는 뉴에라의 피티드캡(사이즈 조절 기능 없이 딱 맞게 쓰는 모자)과 겹치는 구석도 있지만 엄연히 다른 종류다. 스냅백은 태초부터 남자, 마초들을 위한 도구였다. 야구를 위해 탄생해, 팀 스포츠 문화를 이끈 아이템이다. 단단한 크라운(머리를 감싸는 부분)과 일자 챙이 지닌 남성미는 트러커캡(트럭 운전사들이 쓰던 그물망 소재를 쓴 모자) 등 아저씨 모자와 DNA를 공유한다. 1990년대 힙합 아티스트들의 머리 위에서 전성기를 누릴 때도 길거리 생활의 거친 현실과 태도를 보여주는 무기였다. 귀여워 보이거나 젊어 보이기 위해 착용한 스냅백이 어색하고 부대끼는 본질적 이유다.
중년이 될수록 드러내기보다는 무엇을 담을지가 중요해진다. 스냅백은 표현을 위해 태어난 모자다 보니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얼굴이 크고 넓다면 크라운이 낮고 둥근 모자를 택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빈티지 스냅백이 오히려 아저씨들에게 잘 어울리는 이유다. 앞머리를 내고 살짝 얹어 쓰는 연출은 제발 삼가자. 대신 응원 팀이나 문화, 좋아하는 문구 등 자신의 이야기와 의미를 담아 눌러 써보자. 스냅백이 어설픈 젊음의 자화상이 아닌 당당한 자기표현의 멋으로 돌아올 것이다.
스냅백은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표현이 용이한 패션 아이템이다. /핀터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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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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