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첫 진출 이성민…“구범모는 곧 나 자신이었죠”[2025 베니스영화제]

매일경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원문보기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첫 진출 이성민…“구범모는 곧 나 자신이었죠”[2025 베니스영화제]

속보
北 국방성 "美핵잠 부산 입항, 군사적 긴장 고조·엄중한 정세불안정 행위"
[2025 베니스영화제] ‘어쩔수가없다’ 이성민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배우 이성민이 맡은 구범모 역은, 주인공 만수(이병헌)의 손에 가장 먼저 희생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구범모는 만수를 제외하면, 상영시간 139분인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만수와 구범모는 서로 아무런 인연도 없던 ‘완벽한 타인’이지만, 제지 분야에서 평생을 살아온 베테랑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둘의 삶의 궤적과 관심사는 ‘종이’를 구심점 삼아 묘하게 겹치는데, 둘은 “제지 분야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집요함까지도 빼닮았다. 두 사람에게 다른 선택지는 애초에 없다. 그래서 두 인물은 서로 닮지 않은 듯, 그러내 너무 닮은 존재로 그려진다. 구범모와 만수는 ’서로 마주 보는 거울‘과 같은 오묘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구범모 역으로 제82회 베니스영화제를 찾은 이성민. 30일(현지시간) 현장에서 만난 이성민은 “연기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구범모는 바로 나”라고 말했다. [CJ ENM]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구범모 역으로 제82회 베니스영화제를 찾은 이성민. 30일(현지시간) 현장에서 만난 이성민은 “연기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구범모는 바로 나”라고 말했다. [CJ ENM]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배우 이성민이 열연한 구범모는 주인공 만수(이병헌)에 의해 가장 먼저 살해 당한다. [CJ ENM]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배우 이성민이 열연한 구범모는 주인공 만수(이병헌)에 의해 가장 먼저 살해 당한다. [CJ ENM]


30일(현지시간) 제82회 베니스영화제가 개최 중인 이탈리아 리도섬에서 만난 배우 이성민은 “저 역시 스무 살 이후부터 이것(배우)밖에 안 했고, 다른 건 해보지도 않았고, 또 할 줄 아는 다른 것도 없다. 그래서 내가 맡은 배역인 구범모 역에 더 끌렸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구범모가 바로 나”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주인공 만수가 25년간 재직했던 제지업체 ‘태양’에서 해고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재취업을 갈망하나 번번이 낙방한 만수는 동종업계에서 자신과 비슷한 경력자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들을 살해해 없애면, 자신이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 때문이었다. 만수의 손에 가장 먼저 살해되는 ‘제1의 희생자’가 바로 배우 이성민이 맡은 구범모다.

“구범모는 만수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죠. 범모는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고, 그래서 삶의 선택지가 하나뿐인 인물이에요. 영화 제목처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인물들인데,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합니다. 자신이 처한 문제에 대해서 다른 길을 가려는 사람은 없어요.”

전날인 29일(현지시간) ‘어쩔수가없다’ 상영 당시, 현장에 있던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을 터뜨렸다. 어두운 주제의 이야기이지만, 영화는 블랙유머로 가득하다. 특히 자세히 밝힐 순 없는 난투극 하나가 영화에 등장하는데, 이때 조용필의 명곡 ‘고추잠자리’가 나온다.


“관객분들께서 많이 웃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신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웃음을 터뜨리신 것 같아요. 그 장면을 전후로 외국 관객분들이 많이 웃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 장면을 촬영하는데 3일이 걸렸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배우 이성민이 열연한 구범모는 만수와 일면식도 없지만 둘은 가장 닮은 인물이다. [CJ ENM]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배우 이성민이 열연한 구범모는 만수와 일면식도 없지만 둘은 가장 닮은 인물이다. [CJ ENM]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는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인물들이다.

배우 이성민은 “저 역시 평생 배우밖에 안 했는데 만약 배우를 다른 가상의 인물이 대체하게 되면 그땐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영화는 단순히 실직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우리가 앞으로 당면하게 될, 우리 모두가 직면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쩔수가없다’는 그래서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기도 하지만 명화란 바로 이런 작품이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성민은 박찬욱 감독 측으로부터 ‘어쩔수가없다’ 출연을 제안받은 뒤, 시나리오를 보기도 전에 출연을 확정했다고 이날 털어놨다.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는 보통의 연기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 감독님이 배우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배우로서의 저는 늘 설렘과 두려움을 갖고 촬영에 임하는데 박 감독님은 배우들의 이야기에 늘 귀가 열려 있으시고 피드백도 항상 이어집니다. 박 감독님이 배우를 다듬어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에요.”


배우 이성민은 2018년 영화 ‘공작’이 프랑스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진출하면서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바 있다. 그러나 베니스영화제 참석은 이번이 처음이고, 특히 경쟁 부문(In Competition) 진출도 처음이다.

“어젯밤 상영 이후 좋은 평가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저로서는 긴장하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관객분들이 ‘어쩔수가없다’를 선택해주시길 바라는데,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정말 중요한 건 관객분들께서 많이 극장을 찾아주셨으면 해요.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영화이기에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기원합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