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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서도 독립운동"…죽음도 못 꺾은 안중근의 신념을 읽다

연합뉴스 이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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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서도 독립운동"…죽음도 못 꺾은 안중근의 신념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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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광복 80주년 맞아 독립운동가·일제 강점기 생활상 등 조명
안중근[연합뉴스 자료사진]

안중근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이런 자를 살려두면 동양 평화를 해치게 되므로 나는 동양 평화를 위해 그를 이 세상에서 제거한 것이지, 개인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니다."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총살한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사흘이 지난 1910년 2월 17일 사건에 담은 대의를 이렇게 천명했다.

안 의사는 "나는 처음부터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할 생각이었으니 이제 와서 죽음을 두려워하여 항소를 신청하지 않겠다"며 같은 해 3월 26일 순국했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1908∼1932)은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며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놓으라"고 당부했다.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출판계는 이처럼 독립운동가들의 사상과 활동, 일제 강점기의 민족 수난을 돌아보는 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책 표지 이미지[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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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신간 '우리는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창비)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유관순 등 국권을 되찾기 위해 제국주의 일본에 저항했던 독립운동가 45명의 목소리를 갈무리해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안중근은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며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고 이승에 작별을 고했다.

책 표지 이미지[필로소픽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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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픽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항일로드 2000㎞'(필로소픽)에서는 일본 열도 곳곳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대에서 약 3㎞ 떨어진 곳에 있는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터, 가나자와(金澤)시에 있는 윤봉길 추모관, 3·1 운동의 기폭제가 된 2·8 독립선언의 역사를 전하고 있는 재일본한국YMCA 등 50곳을 소개한다.


재일본한국YMCA회관 앞에 설치된 2.8독립선언 기념비[연합뉴스 자료사진]

재일본한국YMCA회관 앞에 설치된 2.8독립선언 기념비
[연합뉴스 자료사진]


'내 방안의 역사 컬렉션'(휴머니스트)는 저자의 수집품 110점을 매개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1876년부터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이 벌어진 1950년까지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기념사진은 식민지 정책의 여러 측면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19년 열린 시흥공립보통학교(현 서울 금천구 시흥초등학교) 제7회 졸업식 사진을 보면 교사들이 제복을 입고 칼을 지니고 있으며 뒤에는 일장기가 걸려 있다. 하지만 이듬해 열린 제7회 졸업 기념사진에서는 제복이 사라졌고 일본인 교장만 양복을 입고 나머지 조선인 교사 3명은 한복을 입고 있다. 칼은 보이지 않는다.

책은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그해 4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만세 운동이 뜨거웠고 이를 계기로 조선총독부가 무력과 억압을 앞세운 무단통치를 이른바 문화통치로 전환했다고 풀이한다. 결국 이들 사진이 3·1 운동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만 책은 "문화통치로의 전환은 채찍 대신 당근을 선택한 것"이었다며 "회유책으로 친일파를 길러 조선 민족을 분열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책 표지 이미지[휴머니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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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책에 소개된 수집품 중 일본어 발음을 한글로 적은 황국신민 서사 전단은 꽤 흥미롭다. 이 전단은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일본은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고 '국어 상용'이라는 구호 아래 관공서와 학교 등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다. 일제는 일왕과 일본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황국신민 서사 암송을 조선인에게 강요했는데 일본어를 잘 모르는 조선인이 이를 외우도록 하기 위해 발음을 한글로 적었다는 것이다. 일제가 조선어를 금지해놓고 할 수 없이 조선어에 의지한 상황이 모순되고 부조리하다고 책은 꼬집는다.

책 표지 이미지[을유문화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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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국의 어린이들'(을유문화사)은 1930년대 후반 조선총독상(賞)을 내걸고 열린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한 어린이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책은 일제 강점기 조선 어린이들의 일상이 어떠했는지, 식민지 정책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1938년 일본 식민기구 산하 경성일보사의 일본어 어린이 신문 '경일소학생신문'이 주최한 제1회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학무국장상을 받은 전라남도광주북정공립심상소학교 4학년 우수영이 쓴 '수업료'를 보면 학교 수업료를 석달분이나 내지 못해 괴로워하는 어린이의 심정이 잘 표현돼 있다.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던 이 어린이는 할머니의 권유에 따라 숙모에게서 도움을 받기 위해 하루 종일 걸어서 전남 장성까지 간다.

책에는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열린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한 소학생(초등학생)이나 한반도에 거주하는 일본 어린이의 글도 실려 있어 이들의 생활 환경이나 생각이 조선인 어린이와 어떻게 달랐는지도 비교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섬사범학교부속제1소학교 1학년 시마이 노리코(島正規子)가 지은 '아세틸렌 자동차'라는 글에는 당시 석유의 대체재로 사용됐던 아세틸렌을 연료로 쓰는 아세틸렌 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닌 것이 매우 즐거웠다는 소감이 적혀 있어 수십㎞를 걸어서 이동해야 했던 조선 어린이의 처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토종 한국인보다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꿰뚫어 본다는 평가를 받은 러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 박노자는 '붉은 시대'(한겨레출판)에서 1·2차 세계 대전 사이 기간인 전간기(1918∼1939년)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흐름과 항일 투쟁을 소개한다.

책 표지 이미지[한겨레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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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책은 일제의 강압적 지배에 대한 불만이 1920∼1930년대 좌파적 급진화 경향과 맞물려 사회 운동으로 표출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1919년 벌어진 3·1 운동에 한반도 내부 요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흐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볼셰비키가 1917년 혁명 이후 민족 자결의 보편적 원칙을 과감하게 호소했고 그 영향으로 우드로 윌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을 원칙적으로 인정한 것이 조선에서의 대규모 봉기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일본 본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임금 지대인 한반도에 공장이 급격하게 증가한 가운데, 공산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조선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으로 일본인과 조선인 고용주 양측에 저항한 것에도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조선 공산당은 항일 투쟁에서 민족 단일 전선을 펼 목적으로 1927년 조직한 신간회의 주축을 형성할 정도로 한때 세력을 확대했다. 일본 경찰이 1928년 10월 44개의 신간회 지역 지부에서 최소한 45명의 공산당 간부가 신간회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인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 우리는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 = 김구 외 지음. 248쪽.

▲ 항일로드 2000㎞ = 김종훈 지음. 352쪽.

▲ 내 방안의 역사 컬렉션 = 박건호 지음. 436쪽.

▲ 제국의 어린이들 = 이영은 지음. 324쪽.

▲ 붉은 시대 =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448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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