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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과 전공의들에게, “왜 돌아오는가?” [신영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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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과 전공의들에게, “왜 돌아오는가?” [신영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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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환자단체연합회를 찾아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전공의와 환자단체가 대면해 대화한 것은 의-정 갈등이 시작된 지 1년5개월 만이다. 이날 참석한 한성존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머리발언에서 “1년5개월 이상 길어진 의-정 갈등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불안하셨을 국민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공동취재사진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환자단체연합회를 찾아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전공의와 환자단체가 대면해 대화한 것은 의-정 갈등이 시작된 지 1년5개월 만이다. 이날 참석한 한성존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머리발언에서 “1년5개월 이상 길어진 의-정 갈등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불안하셨을 국민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공동취재사진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돌아온다고 한다. 나는 궁금하다. “왜 돌아오는가?”



거의 40년 전 일이다. 나는 의대 본과 4학년생으로 안과 실습 중에 김○○씨를 만났다. 그는 남루한 옷을 입은 30대 초반의 노동자였다. 공사 중 벽에 못을 박다가 못이 튀어 오른쪽 눈에 박힌 상태였다. “그만한 돈은 없습니다.” 수술을 안 하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될 거라는 안과 교수님의 말에도 그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황은 안타까웠지만, 환자 대기 줄을 줄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인류사적 과제라 여겼던 나는 김씨를 복도로 모시고 나왔다. 그때 내가 그의 등을 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주말 산동네 진료 활동의 경험을 살려 복지사를 찾아보라는 정보를 제공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교수님이 나를 찾았다. “그 환자분 가시게 하면 안 돼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진료실 밖으로 뛰어나와 달렸다. 다행히 그분은 병원 로비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분을 모시고 진료실로 돌아왔다. “이분이 수술비를 내주시기로 했습니다.” 교수님은 기쁜 얼굴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50대 여성분을 가리켰다. 안과 수술 후 입원해 있는 환자의 어머니였는데 환자를 데리고 외래로 왔다가 우연히 김씨의 이야기를 듣고 수술비를 대신 내겠다고 한 것이다. 그 후 나는 안과를 떠나 다른 과 실습을 돌았다. 19층 병동 게시판에서 수술 후 입원해 있는 김씨의 이름을 확인했지만,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그 층을 피해 다녔다. “의사가 먼저 환자를 포기해도 되는가?”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며칠 만에 서울의 최후 방어선인 미아리고개를 돌파하고 창경궁에 다다랐다. 인근 서울대병원은 1천여명의 환자들이 입원실, 수술실은 물론 병원 복도까지 가득 차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란 자는 “안심하라”는 메시지만 남기고, 이미 대전으로 도망친 뒤였지만, 대부분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병원에 남았다. 환자와 의료진을 지키던 조용일 소령, 남 소위, 민 선임하사와 소대원 전원은 전투 끝에 모두 전사했다. “의사가 환자 곁을 떠나도 되는가?”



지난달 28일,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환자단체연합회와 만난 자리에서 “1년5개월 이상 길어진 의-정 갈등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불안하셨을 국민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 만든 지난해 2~7월 사이 의료 공백 기간 초과 사망자 수는 3136명이다. 여기에는 항암 치료와 수술이 늦어진 환자, 92차례나 전화를 돌렸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숨진 30대 심정지 환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전공의 집단사직’ 때문에 발생한 ‘죽음’과 ‘고통’ 앞에서 ‘의-정 갈등’을 탓하며 ‘불편’과 ‘불안’에 대해 사과한다는 표현은 정확하지도, 충분해 보이지도 않는다. 더욱이 아직도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한 초과 사망은 없었으며, 자기들 덕분에 오히려 의료체계가 좋아졌다는 자기기만적 논리를 설파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왜 떠났고, 왜 돌아오는가?”



의대생과 전공의 복귀의 반대편에는 이들에 대한 전례 없는 특혜에 분노하는 시민들이 있다. 하지만 이 특혜에는 비싼 청구서가 숨어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시민과 의사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이것이 만들어낼 2차, 3차 후유증은 시민, 환자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의사들을 괴롭힐 것이다.



나 같은 선생이 갈 곳은 학생보다 더 뜨거운 지옥이고 무엇보다 학생에게 절망할 권리가 없다. 희망은 늘 간절할수록 가냘프지만 그래도 꿈을 심고 힘을 길러야 한다. 일부 동료들의 집요한 공격에도, 딱딱한 당직 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휑한 강의실을 지킨 이들이 희망이다. 오만한 정권, 기성세대의 잘못이 뒤섞여 있더라도, 환자들이 맞이했던 죽음과 고통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면, 진심으로 사죄하는 이들이 희망이다. 그래도 이들이 잘못과 실패에서 배우는 젊은이들이고 좋은 의사가 되어 갚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 희망이다.



김○○씨, 50대 여성, 안과 교수님, 환자와 의료진을 지키다 죽은 군인의 가족들은 그 후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함, 미안함, 고마움이 뒤섞여 다가오는, 의대생들의 복귀로 어수선한 2025년 8월의 한 의대 교정에서,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왜 돌아오는가?” 분명한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의대생, 전공의 자신과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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