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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세계대회 우승 0 … 위기의 한국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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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박영훈도 춘란배 아깝게 놓쳐

속기 위주 국내 기전이 발목 잡은 듯

바둑 인구·대회 줄어 분위기도 침체

“이대로 가면 일본 바둑처럼 될 것”

중앙일보

지난 26일 중국에서 열린 제11회 춘란배 결승 3번기 최종국에서 박영훈 9단(왼쪽)이 탄샤오 8단에게백 불계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로써 한국은 또다시 세계대회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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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제11회 춘란배 결승 최종국에서 박영훈 9단이 돌을 거두는 순간, 오랜만에 한국 기사의 우승을 기대했던 바둑팬들은 비탄에 잠겼다. 박 9단이 준우승에 그치면서 한국 바둑의 무관(無冠) 탈출은 또다시 미뤄졌다.

중국의 탄샤오(檀嘯) 8단이 춘란배 우승컵을 가져가면서 현존하는 세계바둑대회 타이틀 7개는 모두 중국의 차지가 됐다. 아직 결승전이 열리지 않은 제1회 신아오배도 커제(柯潔) 9단과 펑리야오(彭立堯) 6단의 중·중 결승전이 예정돼 있다.

한국 바둑이 위기다. 2013년 이후 열린 18차례의 세계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한 건 2014년 삼성화재배(김지석), 2015년 LG배(박정환), 2016년 LG배(강동윤)뿐이다. 한국이 14연속(2000년 8월~2003년 7월) 메이저 세계대회를 제패했던 영광스러운 나날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돼 버렸다. 한국 바둑은 왜 이렇게 된 걸까.

◆세대교체 실패=한국 바둑이 위기를 맞은 가장 큰 원인은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랭킹 10위 선수들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중국은 랭킹 1~10위 전원이 프로기사의 전성기로 여겨지는 20대다. 이들의 실력은 성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0명 가운데 세계대회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한 적이 있는 선수는 무려 8명이나 된다.

이와 달리 한국은 랭킹 10위권 선수 가운데 20대가 절반인 다섯 명이다. 이 중 세계대회 타이틀을 차지했던 선수는 세 명(박정환·김지석·강동윤)뿐이다. 중국과 비교하면 확실히 허리 층이 부실하다. 이들 외에 세계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모두 30대다.

10대인 신진서(17) 8단이 국내 랭킹 2위에 올라 있는 건 고무적이다. 그러나 신진서 8단의 선전 이외엔 한국 바둑에 희망적으로 볼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위빈(兪斌) 중국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은 “1999년 이후 중국에서 태어난 프로기사 중에는 신 8단을 상대할 만한 선수가 꽤 많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국 바둑의 미래가 더 걱정되는 대목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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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速棋) 위주 기전=속기가 대부분인 국내 기전 운영 방식도 한국 바둑의 몰락을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 기전은 방송 중계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속기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매 경기 다섯 판 중 네 판을 제한시간 10분(초읽기 40초 5회) 초속기로 진행한다. 국내 기전인 GS칼텍스배와 KBS바둑왕전도 제한시간을 각각 10분(초읽기 40초 3회), 5분(초읽기 30초 5회)으로 지정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 기전은 제한시간이 평균 2~3시간으로 세계대회와 제한시간이 얼추 비슷하다. 중국 갑조리그는 매 경기 네 판 가운데 세 판을 제한시간 2시간40분으로 운영한다. 중국 기전인 창기배 등도 제한시간이 3시간 내외로 넉넉하다.

목진석 한국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은 “세계대회는 장고 대국이 많은데 국내 기전은 속기 위주라 선수들이 장고 대국에 적응할 기회가 많지 않다”며 “속기에 익숙해진 선수가 갑자기 장고 대국을 두면 시간 안배나 호흡 등에서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바둑 인기 하락=국내에서 바둑의 인기가 식으면서 바둑 인구와 기전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다. 컴퓨터·스마트폰 게임이 발달하면서 바둑을 즐기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다.

이와 달리 중국은 바둑 시장이 성장세다. 위빈 중국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은 “중국은 바둑 애호가가 많고 자식에게 바둑을 가르치려는 부모도 많다. 바둑 시장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중국 선수들의 세계대회 성적도 좋아 바둑의 인기가 더욱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건 프로기사회장은 “바둑대회는 프로기사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원동력인데 중국과 달리 국내에는 종합 기전이 줄면서 선수들의 사기도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한국 바둑은 구습에 얽매여 교육 방식부터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정체됐다”며 “한국 바둑은 프로기사들부터 스스로 위기를 인정하고 분골쇄신의 자세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일본 바둑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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