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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그거너사’…뭘 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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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드라마·예능 프로 줄임 제목 남발

호기심 끌고 입소문 타려는 홍보 전략

“홀수로 줄여야 흥행” 속설도

한글 붕괴·소통벽 부작용 우려 제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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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너사’, ‘아이해’, ‘아제모’…. 이게 무슨 말이냐고? 바로 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티브이엔), <아버지가 이상해>(한국방송2),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문화방송)를 각각 줄여 부르는 ‘줄임 제목’이다. 그렇다면 ‘행주사’는? 절 이름? 당연히 아니다. 일일드라마 <행복을 주는 사람>(문화방송)이다.

기사나 방송 자막에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긴 제목을 줄여 부르는 게 일반화되고 있다. 기자들이 임의로 줄여 쓰기도 하고, 제작사에서 아예 줄임 제목을 공식적으로 정해주기도 한다. 효율적인 면에서 좋다는 반응도 있지만 원래 제목의 의미가 전혀 담기지 않은 무분별한 줄임 제목은 그저 언어유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제목 줄여 부르기는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다. 1980년대 후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문화방송)는 ‘토토즐’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문화방송)는 ‘일밤’으로 불렀다. ‘무도’는 <무한도전>(문화방송)보다 더 많이 쓰이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로 일반화됐고, 누가 ‘미사’ 보러 간다기에 천주교 신자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미안하다 사랑한다>(한국방송2)를 보런 간 것이었다는 일화도 있다.

지금의 줄임 제목은, 시청자들이 ‘알아서’ 줄여 부르던 그때와 달리 프로그램 홍보의 주요한 전략으로 활용된다. 프로그램이 관심을 받고 인기를 끌려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입소문을 타야 하는데, 그 소재로 줄임 제목을 쓰게 된 것이다. 실제로 줄임 제목은 그 자체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그거너사’의 뜻을 찾아보다가 드라마를 알게 됐다거나, ‘아제모’가 대체 뭐기에 포털 사이트 주요 뉴스에 등장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보다가 무슨 말인지 궁금해 검색해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포털에선 기사 제목이 보통 한줄만 들어가는 탓에 프로그램 제목을 짧게 줄이는 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특히 최근엔 ‘단어’가 아니라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처럼 구체적이고 긴 문장 형태의 제목이 많아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제목을 정할 땐 줄임 제목까지 고려한다. 여러 글자를 조합해본 뒤 가장 입에 잘 붙는 제목으로 정한다. ‘시타’(<시카고 타자기>, 티브이엔)처럼 두 글자도 있지만, 업계에선 대부분 제목을 줄일 땐 대부분 짝수보다 홀수를 선호한다.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홀수 제목이 흥행이 잘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원래 제목의 뜻을 담지 않은 무분별한 줄임 제목 사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아무리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줄임말이 유행이지만, 언론 등에서 쓰면서 ‘공식화’하는 것은 결국 한글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비판이다. 한 드라마 피디는 “제작발표회나 기사 등에서 줄임 제목을 마구 쓰는 것은 보기가 불편하다. 미디어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만큼, 공식적인 자리나 기사 등에서는 원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좋겠다”며 “그래 봤자 몇 글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기지 한글학회 학술부장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은어처럼 사용하는 것은 소통에 벽을 만들고 언어로 인한 계층간 단절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또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유스케’가 아닌 ‘스케치북’으로 줄이는 식으로 “제목의 핵심어나 주제어 한두 낱말로 원래 제목의 뜻을 알 수 있게 조합해서 사용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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