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임성일의 맥] 이동국 슈퍼맨 망토의 절반은 땀이 짰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뉴스1

슈퍼맨처럼 필드를 날아다녔던 이동국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전북현대 제공) © News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지난 1998년 한국 축구계는 19세 공격수의 등장과 함께 흥분에 빠졌다. 앳된 얼굴의 이동국이 포항스틸러스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데뷔, 머릿결보다 환상적인 슈팅으로 11골을 기록하면서 신인왕에 등극했을 때가 1998년이다.

그해 프랑스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이 네덜란드에 0-5 참패를 당하던 날, 그래도 축구팬들을 위로해줬던 것은 젊은 스트라이커의 과감한 중거리 슈팅이었다. 같은 해 10월 태국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에서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이동국이 중심에 있었다. 그는 일본과의 결승전 결승골 포함, 대회 기간 5골을 터뜨리며 포효했다.

그로부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동국은 한국 축구사에, 특히 K리그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받았다. 언제까지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것 같던 '청춘' 이동국이었는데, 그 '라이언 킹'도 결국 현역 생활을 마감한다.

이동국은 26일 자신의 SNS에 "올 시즌을 끝으로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았던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습니다"라고 적으며 은퇴를 선언했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표현으로 제2의 축구인생을 예고했으나 사자왕의 양팔 벌린 골 세리머니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타고난 공격수였고 시작부터 꽃길을 걸었다. 1년 후배라 비슷한 시절 공을 찼던 차두리 오산고 감독은 "동국이 형은 고등학교(포철공고) 때부터 이미 엄청난 스타였다"고 회상한 바 있다. 대한민국 스트라이커 계보의 적자 황선홍 전 감독은 과거 "동국이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고 서른 중반을 넘어서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후배 공격수들 중 제대로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는 동국이 정도"라고 잘라 말했을 정도다.

신체도 축복 받았다. 이동국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최강희 감독(상하이 선화)은 "체형이나 체질이 타고 났다. 저녁경기를 하고 다음날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20대 초반 선수들과는 달리 30대 중후반이 되면 적어도 이틀은 잘 먹고 잘 쉬어야 하는데 이동국 아저씨는 하루만 자도 거뜬하다"면서 특별한 하드웨어를 소개한 적 있다.

뉴스1

A매치 105경기 출전 33골에 빛나는 이동국 © News1 이동원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축구계 '엄친아'다. 타고난 실력에 신이 준 체력 그리고 빛나는 외모까지, 모든 이들이 부러워할 요소들을 모두 갖춘 선수였다. 따라서 '하늘이 허락한 재능이 너무 많은 덕분에 23년의 현역 생활이 가능했다'고 설명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사실 이동국만큼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던 선수도 없다.

당연히 발탁될 것이라 여겼던 2002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외면과 함께 그에게는 '게으른 천재' '수비가담 없는 공격수'라는 낙인이 찍혔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에는 오른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꿈이 깨졌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에서는 결정적 찬스를 날려 맹비난을 받아야했다.

사이사이 낙담할 일화들이 부지기수다. 2007년 미들즈브러의 유니폼을 입고 시작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생활이 단 1시즌 만에 끝났을 때, 그리고 2008년 성남일화에 복귀해 1년 내내 뛰고도 2골밖에 기록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동국은 끝났다'는 독설을 쏟아냈다.

어지간한 멘탈의 소유자였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어도 이해될 불행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번번이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전북의 녹색 유니폼을 입던 2009년부터는 더 높은 곳으로 올랐다. 앞선 10년보다 더 화려하고 귀감이 되는 10년이 30대 이후 작성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재능을 타고났구나 싶은 친구들이 더러 보여. 기술도 어느 정도 갖췄고 두뇌회전도 빨라. 그런데 말이지. 사실 그것도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거든? 문제는 그런 친구들이 그 작은 재주만 믿고서 게을러진다는 것이지. 많은 후배들이 그러고 있어. 그러니 발전이 아니라 제자리걸음이 될 수밖에. 이 악물고 이기려고 달려들어도 시원찮은 판에..."

10여 년 전 '풍운아' 이회택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한숨을 섞어 밝힌 견해다. 골을 넣는 것에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던 그에게 소싯적 천재 소리를 들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이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을 때 나온 답변이다.

이 부회장은 "솔직히 공격수는 타고나는 부분이 좀 필요해. 나도 순발력이나 스피드 같은 것은 가지고 태어난 것 같아. 이런 것은 사실 배울 수가 없는 것이거든"이라는 말로 '천부적 재능'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악물고 달려드는' 노력이 덧붙여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축구사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한명의 거목 김호 전 감독은 비슷한 시기 "축구선수로서 빛을 발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길어야 10년 안짝입니다"라는 말을 전한 적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도 10년 전성기 구가하기가 힘들다는 의미인데, 이동국은 23년이다. 지독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뉴스1

최강희 감독을 만나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동국 © News1 문요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79년생 이동국은 지난 2017년까지 대표팀에 발탁됐다. 당시 최강희 감독은 "서른아홉이면 연령 제한에 걸리는 것 아닌가? 조기축구회에서도 마흔이면 지칠 때"라고 웃었다.

이어 "대단한 거다. 와서 분위기 잡으라고 부른 것도 아니라 실력으로 대표팀에 뽑혔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동국은 2018년 K리그서 13골, 2019년에도 9골을 넣었다. TV 예능프로그램에 하도 친근하게 나와서 거리감이 없으나 사실 기이한 축구선수다.

축구판을 좀 아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현재 K리그1·2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 대부분은 학창시절 지역을 평정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이들이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시작해 프로무대에 입문하는 것 자체가 좁은 문 통과하기다. 대표팀은 그 문을 통과한 이들이 또 다시 바늘귀를 빠져나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 K리그에서 23년간 최고 선수로 활약했다. 모든 선수들의 꿈인 국가대표로 20년을 뛰었다. 10대부터 잘했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는데 40대가 넘도록 계속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 한국의 축구선수는 기억에 많지 않다.

이동국은 타고난 선수였으나 동시에 노력파였다. 설마 진짜 초능력자겠는가. 그가 걸치고 있는 슈퍼맨 망토의 절반은 땀이 짰다
lastuncle@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