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석(왼쪽)과 이현중이 지난 24일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슛 세리머니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두 선수는 2025 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에서 활약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남지은 기자 |
좀 더 들떠 있을 줄 알았다. 최근에 쏟아진 관심을 생각하면 ‘귀여운 허세’ 정도는 부려도 좋으련만, 두 선수는 대단히 차분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평가전일 뿐이고 실제 경기에서 성적을 거둔 게 아니니까요. 홈에서 많은 응원을 받으며 좋은 분위기에서 뛰어서 더 힘이 난 것도 있어요. (아시아컵이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잘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죠.”
요즘 유행하는 밈(meme·온라인에서 화제 되는 콘텐츠)인 ‘유노윤호의 세번째 레슨’ 없이도 ‘일희일비 않기’를 완벽히 터득한 이현중(25·일본 나가사키 벨카)과 여준석(23·미국 시애틀대)을 지난 24일 충청북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2025 국제농구연맹 남자농구 아시아컵(8월5일~17일·현지시각)을 앞두고 네 차례 평가전에서 한국의 전승을 이끄는 활약으로 최근 인기가 급상승했다. 경기 영상이 조각조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유되면서 농구팬을 넘어 농구가 낯설었던 이들의 마음에도 스며들었다. “나 농구 좋아했네” “농구 덕질 예고” 등의 인증과 각오가 줄을 잇는다.
한국 농구에서 보기 드문 고난도 앨리웁 덩크를 하고, 화려한 드리블 스텝을 선보이는 등 둘 다 농구를 재미있게 잘해서 농구 보는 맛을 느끼게 해줬다. 정작 둘은 “평가전 영상을 돌려봤는데, 난 한참 부족하더라”며 인터뷰 내내 자기반성을 쏟아냈지만.
“제가 경기를 무리하게 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준석)
“수비에서도 많이 부족하고, 공격도 단조로운 면이 없잖아 있고…” (현중)
자신들에게 너무 엄격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이러려고 평가전을 하는 거니까. 문제점을 찾고 보완해 아시아컵에 잘 대비하겠다”(현중)는 똑 부러지는 답이 돌아왔다. “홈에서는 관중의 응원이 에너지가 됐는데, 원정에서는 경기력이 안 나올 때 어떻게 분위기를 반전시킬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현중)
이현중(왼쪽)과 여준석이 카타르와 평가전에서 벤치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유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기 영상 갈무리 |
둘은 2021년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성인 국가대표로서 처음 함께 뛰었다. 성인이 된 이후 두 사람이 한국 코트에 함께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년 만에 대표팀에서 만난 형은 리더감으로 점점 더 완벽해지고 있어요. 소통이나 허슬플레이 하나하나까지 형이 솔선수범하니까 저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요.” (준석)
“준석은 시야가 넓고 공격적이고 빨라서 수비수들의 이목을 많이 끌어요. 이제는 수비수 두세명이 붙어도 공을 잘 빼주는 등 플레이 자체가 차분해졌어요.” (현중)
둘 다 코트에서는 성난 사자처럼 “으아~” 포효하더니 코트 밖에서는 조곤조곤 말하는 게 순한 양 같다. 가만히 보면 두 선수, 은근 닮은 구석도 많다. 농구 선수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지려고 나가는 대회는 없다”는 배포와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정서, 그리고 미국프로농구(NBA·엔비에이)에 도전하는 열정 등이 비슷하다.
이현중은 고등학교 때 호주에 있는 엔비에이 글로벌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미국 데이비슨대학교에서 긴 여정의 닻을 올렸다. 3학년을 마치고 2022 엔비에이 드래프트에 도전했는데, 당시 2라운드 선발이 점쳐졌지만 부상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지명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꿈을 놓지 않았다. 이후 엔비에이 산하 지(G)리그팀과 호주리그 일라와라 호크스를 거쳐 지난 30일 일본리그 나가사키와 1년 계약했다.
여준석도 형을 보며 묵묵히 걷고 있다. 고등학교 때 이현중이 있던 엔비에이 글로벌 아카데미에 다녀온 뒤 한국 고려대에 입학했고, 2022년 미국 곤자가대에 편입학했다. 지난 4월 시애틀대로 옮겨 뛰고 있다.
여준석 평가전 경기 모습. 영상 갈무리 |
언제 마침표가 찍힐지 모르는 쉼표의 연속이지만, 두 사람은 “성공과 실패 어떤 길을 걷든 지금 이 순간이 분명 내 농구인생에 도움이 될 것”(준석)이라고 믿고 전진한다.
꿈을 향해 나아가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고, 때론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 하기도 했다. 문화, 언어 등 많은 것이 낯선 곳에서 최선을 다해도 마음처럼 안될 때가 많았다. 이현중은 “처음 호주에 갔을 때는 힘들어서 엄마와 통화하면서 울기도 했다”는데, 이제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
“농구도 힘들지만 외국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고독해요. 그건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에요. 그럴 때 (준석에게) 전화해서 실없는 이야기도 하고 농구 이야기하고 하고 그래요.” (현중)
“외로운 거는 가시지 않는 거 같아요. 평소에도 늘 한 쪽에 있죠.” (준석)
과거에는 그 시간마저 운동하면서 애써 잊으려 했지만 이제는 “쉴 때는 쉬고, 경기할 때는 하며 확실히 스위치 온·오프가 되는”(현중) 노련함도 생겼다. 여준석은 “그냥 어쩌겠냐 하면서 찬물 샤워를 하는 등 몸을 안정시키는 저만의 방법을 찾는다”며 웃었다.
이현중 평가전 경기 모습.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
현실의 외로움보다 이들을 더 고독하게 하는 건, 한국 농구계의 부정적인 시선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길을 찾아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을 향해 도전 중인 두 사람에게 한국 농구계는 끊임없이 “거기서 뭐 하냐. 돌아오라”고 말한다. 이들이 경기를 뛰어도 국내에서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최근 평가전을 통해 그 얘기가 쏙 들어갔다. “역시 큰물에서 경험은 중요하다”며 “한국 선수들이 더 많이 국외 리그에 도전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온다. 한국 선수가 외국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농구계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꼬집기도 한다. 두 선수는 “선수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그 사람만의 간절함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간절함은 미국에서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주니까요.” (준석)
아시아컵이 끝나면 이들은 각각 일본과 미국에서 엔비에이를 향한 여정을 이어간다. 기약할 수 없는 시간에서 이들을 덜 고독하게 만드는 건 지금의 관심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현중은 “아시아컵에서 좋은 활약을 하는 게 먼저다. 나가는 대회의 목표는 다 우승”이라며 또 차분하게 얘기했다.
진천/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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