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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말해야 하는 순간은 언제나 작은 시련"

연합뉴스 송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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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말해야 하는 순간은 언제나 작은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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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에세이 '여자에 관하여'
쉬숑 책 '여성은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럽다는 속설에 관한 반론'
수전 손택 [윌북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수전 손택
[윌북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나이가 드는 건 힘겨운 일이다. 특히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해의 생일에는 "패배감"을 느낄 수도 있다. 강심장이 아니라면 통상 3자에서 4자로, 4자에서 5자로 갈수록 열패감은 짙어진다.

20세기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 운동가이자 저명한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1933∼2004)은 "나이 드는 일은 단순히 모든 여성의 삶에서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이며, 틀림없이 가장 오래가는 비극"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출간된 '여자에 관하여'(윌북)에서 미국 사회에서 빈번한 '나이 듦의 이중잣대'에 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노화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노화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책에 따르면 남성의 나이 듦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대체로 우호적이다. 흔히 남성의 주름은 "인격"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주름은 남성이 지금까지 '삶을 견뎌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정서적 강인함과 성숙함"을 상징한다.

반면 노화로 인한 여성의 주름, 흉터, 작은 점은 "잡티"로 취급받는다. 여성의 노화는 "성적으로 서서히 불쾌해지는 과정"일 뿐이다. 나이 든 여성의 힘없이 처진 가슴, 주름진 목, 검버섯 핀 손, 가늘고 흰 머리카락, 허리선이 사라진 상체, 핏줄이 툭 튀어나온 다리는 "불쾌감"을 일으킨다.

"사회는 실제로 나이 들어 보이는 아름답고 나이 든 여성이 우리의 상상 속에 살아 숨 쉬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야외에서 반바지와 샌들만 신고 사진을 찍은 아흔살의 피카소 같은 여성은 없다. 누구도 그런 여성이 존재하리라 상상하지 않는다."


[윌북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윌북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런 이중 잣대 문화 속에 길든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여성들에게 이 된다. 그래서 대처법을 배운다. 나이를 비밀에 부치는 것이다. 나이를 묻는 말에 정확하게 대답하는 건 "언제나" 경솔한 행동이 된다.

그러나 손택은 이젠 껍데기를 깰 때가 됐다면서 나이를 정확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성의 삶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도덕적 타락이 바로 자기 나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는 그 모든 그릇된 통념에 상징적으로 동의하는 것과 같다. 여성은 나이를 속일 때마다 자기 자신을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공범이 된다"고 지적한다.


"여성은 얼굴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여성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나이 듦에 관한 이중 잣대'라는 제목의 이 에세이는 1972년에 쓰였다. 50여년 전 글이기에 여성이 처한 현재 상황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책에는 이 글을 포함해 여성과 당대의 현실을 조망하는 7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아를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아를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손택보다 훨씬 이전에 여성의 열악한 상황을 조명했던 이도 있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쉬숑(1632~1703)이다. 흔히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로 '여권의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쓴 영국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가 거명되곤 하는데, 그보다 100년 이른 시기에 여권을 옹호한 작가다.


그는 신간 '여성은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럽다는 속설에 대한 반론'(아를)에서 여성 혐오와 불평등을 오랫동안 떠받쳤던 사회적 편견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저자는 나약함, 가벼움, 변덕스러움이라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도장 깨기식으로 격파해 나간다. 쉬숑은 강함, 의지, 끈기 있는 존재로 여성을 묘사한다. 남자들의 논리를 혁파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베르길리우스, 세네카 같은 남성 지식인의 주장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며 남성 중심 사회의 문화를 풍자한다.

▲ 여자에 관하여 = 김하현 옮김. 232쪽.

▲ 여성은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럽다는 속설에 대한 반론 = 성귀수 옮김. 13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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