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상담사의 말만 믿고 상가나 오피스텔과 같은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분양 계약을 체결하는 데 혈안이 된 분양상담사의 허위·과장 설명에 피해를 입은 투자자가 한둘이 아니라서다. 경기도에 살고 있는 최지혁(가명·32)씨도 이렇게 오피스텔에 투자했다가 큰 빚만 떠안았다.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분양사기의 실체' 4편에서 지혁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할 때는 리스크에 주의해야 한다.[사진|뉴시스] |
부동산 분양사기는 왜 수그러들지 않을까.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분양사기의 실체' 1~3편에서 그 이유를 추적했다. 언뜻 봐도 그럴 만했다. 정부의 정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연 8시간의 교육을 의무화한 게 전부였으니 오죽했겠나.
모든 분양대행사가 의무교육의 대상인 것도 아니었다. 현행법상 30세대 이상의 주택을 분양하는 분양대행사만 규제를 받았다(주택법 54조의2). 오피스텔·지식산업센터 등 수익형 부동산은 자연스럽게 '법적 사각지대'로 빠져나갔고, 이는 분양사기 계속해서 터지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국회가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한 것도 치명타였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부동산 투기 사태'와 2022년 '전세사기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부동산 분양대행사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국회는 관련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분양대행업체를 규제할 기회를 두차례나 날리면서 규제 사각지대를 되레 키웠다.
이쯤 되면 '누가 부동산 분양사기에 당하겠냐'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렇지 않다. 의외로 많은 투자자가 부동산 분양상담사의 허위·과장 설명의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에 드는 비용이 한두푼이 아니라는 점에서 피해 규모도 심각하다. 그렇다면 부동산 분양사기에 당한 피해자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부동산 분양사기 피해자 최지혁(가명·32세)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 우연히 방문한 분양홍보관 = 지혁씨에게 2023년 2월 8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악몽 같은 날이다. 친구들과의 주말 약속을 위해 영등포역을 지나가던 지혁씨는 주변에 있던 분양홍보관을 방문했다. 우연이었다. "날씨가 추우니 잠깐 몸을 녹이고 가라"는 호객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게 불행의 서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지혁씨는 "아직 손님을 한명도 유치하지 못했다는 호객 아주머니의 말에 분양홍보관에 발을 들였다"며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도 남아 있어 좋은 마음에 아주머니를 따라갔다"고 말했다.
분양홍보관에 들어서자 직원 한명이 따라붙어 분양 중인 오피스텔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트리플 역세권에 복합 행정타운 호재가 있어요. 인기가 많아서 분양 물건이 얼마 남지 않았죠. 계약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설명만 잠깐 들어보세요." 지혁씨가 자리에 앉자 이번엔 자신을 팀장이라고 소개한 A씨(이하 팀장 A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분양상담사가 판매하려는 오피스텔은 다음과 같았다. 전용면적 44.11㎡(약 13.3평), 총 분양가는 공급가격 3억5824만8500원(토지가격 1억173만3500원+건물가격 2억5651만5000원)에 부가가치세 2565만1500원(건물 가격의 10%)을 더한 3억8390만원이었다(표①).
■ 리스크 숨긴 채 장점만… = 팀장 A씨는 오피스텔의 투자가치가 높은 것처럼 설명했다. "정부 기관이 입주할 예정이다" "오피스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기업이 공장을 증설하려고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 "해당 지역엔 더 이상 오피스텔을 지을 수 없어 수요가 넘쳐날 것이다" "대출이 분양가의 70%까지 가능하다" "입주 후 1~2년만 지나면 가격이 5억원대로 상승할 것이다" "세를 놓아도 월 120만~150만원은 받을 수 있다" 등이었다.
팀장 A씨는 "완공한 오피스텔의 관리 업무도 자신들이 맡아서 할 것"이라며 "완공 후 임차인도 책임지고 구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투자의 위험성을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다.
수익형 부동산을 잘 몰랐던 지혁씨는 팀장 A씨의 설명에 말 그대로 '혹'했다. "좋은 기회인 것 같지만 분양가(3억8390만원)의 10%에 해당하는 계약금(3839만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요. 쉽지 않을 듯하네요."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에게 팀장 A씨가 파격 조건을 내걸었다. "계약금 10%의 절반(1919만5000원)은 시행사에서 부담할 거예요. 여기에 오피스텔을 업무용으로 분양받으면 부가가치세(2565만1500원)를 환급받을 수 있어 사실상 한푼도 들이지 않고, 오피스텔을 가질 수 있죠. 저만 믿으세요(표②)."
[※참고: 오피스텔을 주거용이 아닌 업무용으로 등록하면 건물 가격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오피스텔 매수인이 일반 과세사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만약 업무용으로 등록한 오피스텔을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하는 주거용으로 임대하면 환급받았던 부가가치세를 추징당한다.]
[사진|뉴시스] |
팀장 A씨가 제시한 방법을 다음과 같다. 분양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 3839만원 중 절반인 1919만5000원은 시행사가 부담한다. 그럼 지혁씨가 내야 할 계약금은 1919만5000원이다. 이 돈을 지혁씨가 환급받을 부가가치세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자. 여기선 분양 과정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계약금 10%, 중도금 60%, 잔금 30% 비율로 분양대금을 납부한다. 부가가치세 환급금은 분양대금을 낼 때마다 신고해 돌려받을 수 있다. 부가가치세 환급금(2565만1500원)을 때마다 나눠 받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여기에 꼼수 아닌 꼼수를 적용한다.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낼 때 환급받는 부가가치세를 시행사가 계약금 명목으로 챙긴다. 계약금과 중도금이 분양대금의 70%라는 걸 감안하면 부가가치세 환급금의 70%(2565만1500원×0.7)인 1795만6050원을 계약금으로 가져간다는 거다. 이렇게 하면 지혁씨가 당장 부담해야 하는 계약금은 123만8950원으로 줄어든다(표③).
■계약금 50% 지원의 덫 = '124만원만 있으면 3억원이 넘는 오피스텔이 내 것이 된다'는 생각에 지혁씨는 덜컥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지혁씨는 2년이 흐른 지금 이때의 계약을 후회하고 있다.
계약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도금과 잔금을 모두 내지 못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분양상담사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입주 예정이라던 정부기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기업이 공장을 증설한다던 얘기도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했다. 오피스텔 인근에는 빌라 등 공급 물량이 넘쳐났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공실이 수두룩했다(표④).
지난 4월 오피스텔이 완공되고 잔금을 치를 시기가 다가오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부동산 분양대행사는 분양가의 70%를 은행에서 빌릴 수 있다던 분양상담사의 호언장담은 공염불이 됐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오피스텔을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대출금이 1금융권 기준 분양가의 30~50% 수준으로 떨어졌다.
잔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던 지혁씨는 급한 마음에 분양계약을 체결한 분양상담사 팀장 A씨에게 연락을 했지만 닿지 않았다. 분양대행사에도 문의를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분양대행사 측은 "팀장 A씨는 예전에 퇴사했다"며 "분양계약서에 문제가 없는 이상 잔금을 정해진 기간에 치르지 않으면 가산금이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계약금의 50%를 지원받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계약해지가 불가능하다"며 "잔금을 치른 후 매각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통보했다. 그렇다면 분양상담사의 허위·과장 설명에 속아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지혁씨는 왜 중도금과 잔금을 마련하지 못한 걸까. 조금 복잡한 이야기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분양사기의 실체' 5편에서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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