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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유튜버가 만든 ‘제2방사능’ 괴담

조선일보 김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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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유튜버가 만든 ‘제2방사능’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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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사태 땐 온 나라가 난리였잖아요. 이번 논란을 두고는 정부도 정치권도 왜 이렇게 조용하죠?”

얼마 전 강화도 민머루 해변에서 만난 상인은 분통을 터뜨렸다. 휴가철이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야 하지만 텅 비었다. 지난달부터 불거진 북한 핵 폐수 의혹으로 북한과 인접한 강화도가 방사성 물질로 오염됐을 수 있다는 괴담이 퍼지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것이다. 2년 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방류 때는 야권 인사들이 앞다퉈 “독극물” “차라리 X를 먹겠다”라며 들고일어났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권을 잡은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하고 있는 모습에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번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화제가 되는 사건에 몰려드는 유튜버를 뜻하는 이른바 ‘사이버 레커’들 때문이다. 이들은 핵 폐수 의혹이 퍼지자 직접 수치를 재겠다며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강화도를 찾았다. 하지만 이들의 잘못된 측정 방식 때문에 방사능 수치가 순간적으로 치솟는 모습이 유튜브를 탔다. 시청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일부 유튜버는 이런 영상을 인용하며 “방사능 수치가 체르노빌급”이라며 혼란을 부추겼다. 논란이 커진 틈을 노려 방독면을 쓴 채로 강화도 해변에서 토익 공부를 하며 방사능 측정을 하는 콘텐츠까지 생겨났다.

논란이 커지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달 초 민머루 해변을 포함한 전국의 방사능 수치가 정상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튜버들이 방사능 측정기로 강화도 일대의 방사능 수치를 재는 콘텐츠와 이를 토대로 북한의 핵 폐수 의혹을 기정사실로 몰고 가는 영상 수십 개가 이미 유튜브에 퍼진 이후였다. 방사능 공포에 휩싸인 국민은 강화도 숙소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여행지를 변경하고 있다.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괴담의 소재로 활용되기 쉽다. 대중의 눈과 귀를 붙잡고 방사능 관련 음모론을 퍼뜨리면 국민이 쉽게 불안에 휩싸인다. 타격은 평범한 시민들이 입게 된다. 2년 전 노량진 수산시장은 한동안 손님들이 크게 줄었다. 지금 강화도 역시 여행 성수기인데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일부 사이버 레커들은 대한민국에서 말 그대로 ‘사회적 흉기’였다.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가 하면 유명인을 협박하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바닷물처럼 몸에 닿거나 먹는 것과 연결되는 건 사람들이 특히나 민감하게 여긴다. 이런 지점을 파고들어 자극적인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행위는 엄단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북한 핵 폐수 방류 의혹이 터졌을 때 정부의 대응 방식이 아쉽다. 즉시 불안을 잠재울 수 있도록 발 빠르게 대응책을 내놨다면 방사능 측정기를 든 유튜버들이 강화도에서 활개를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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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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