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경남 의령군 대의면 구성마을 인근 비닐하우스가 지난 19일 내린 폭우로 비닐이 찢겨지고 골조가 뒤틀려 있다./사진제공=뉴시스 |
지난 16일부터 닷새간 이어진 집중호우로 벼와 콩, 수박, 고추 등 주요 농산물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축산 농가도 폭우를 피해가지 못했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오면서 농산물을 비롯한 먹거리물가 부담도 커지고 있다.
2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전날까지 파악된 농작물 침수 피해 면적은 2만8491㏊(헥타르·1㏊=1만㎡)다. 축구장(0.714㏊) 약 4만개 규모다.
침수 피해 작물은 벼(2만5065㏊)와 논콩(2050㏊)이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한다. △멜론(140㏊) △수박(133㏊) △딸기(110㏊) △쪽파(96㏊) △대파(83㏊) 등도 침수 피해를 입었다.
가축 피해도 심각하다. △닭(142만9000마리) △오리(13만9000마리) △돼지(855마리) △젖소(149마리) △한우(529마리) 등이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피해 농작물 대부분은 이미 이른 폭염에 가격이 올랐던 품목들이어서 향후 가격 급등이 우려된다.
수박이 대표적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날 기준 수박 한 통의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3만1374원으로 전년(2만4841원) 대비 26.3% 높은 수준이다. 평년(직전 5개년 중 최고·최저 제외 평균) 가격(2만3175원)보단 35.4% 비싼 수준이다.
정부 역시 이번 폭우로 전체 재배면적의 1.2%, 7.8%가 피해를 입은 수박과 멜론이 당분간 높은 가격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침수 피해에 더해 제철 과일 수요 등이 겹쳐서다.
생활물가 상승률 추이/그래픽=김지영 |
올해처럼 집중호우 피해가 컸던 2023년에도 비는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작용했다. 당시 6~7월 폭우로 농축산물 등 가격이 치솟자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4%로 전월(2.3%) 대비 1.1%p(포인트) 급등했다.
정부는 품목별 피해 양상 등을 파악해 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단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방자치체, 농협, 자조금단체 등을 통해 침수 피해 시설하우스 등에 신속한 퇴수 조치, 침수 부위 세척 및 방제 약제 살포 등을 지시했다.
가격이 상승한 품목은 할인지원을 통해 소비자 부담을 완화할 예정이다. 또 가축전염병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농장 주변 오염 물질 제거, 사육시설 세척 및 건조, 소독 등 사양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정부가 물가 관리에 고삐를 죄는 건 새정부 출범 이후 중점을 두고 있는 내수 부양을 위해 물가 안정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2% 안팎의 안정적 물가 흐름 속 정부는 1인당 15만~55만원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을 통해 내수 진작을 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물가가 고공행진 한다면 새정부 출범 기대감 등으로 열리던 지갑이 다시 닫힐 가능성도 있다.
새정부 들어 180도 달라진 정부 재정기조가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이날부터 신청을 받기 시작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단 지적이다.
취임 첫 현장행보로 공주 산성시장을 방문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전반적으로 수요가 떨어져 오히려 재고가 쌓인 상황이지만 특정 품목에 대해 (소비쿠폰) 수요가 몰리면 (물가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며 "특정품목이 소비쿠폰으로 인해 과다하게 (수요가) 올라가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잘 하고, 그런 품목에 대해선 출하량을 늘리는 등 가능하면 스무드한 관리가 되도록 관리하겠다"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정부의 단기처방식 물가관리의 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율 안정과 유류세·전기세 인하 등 원가 부담을 낮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특히 미국과 관세협상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농산물 수입 확대가 필요하단 주장도 제기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6월 물가설명회 당시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생활비 수준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물가 수준을 구조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선 농산물 수입 확대 등의 조치가 필요하단 주장이다.
세종=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공주(충남)=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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