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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멸칭으로 부른 룰라… 미국·브라질 ‘기싸움’ 고조

조선일보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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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멸칭으로 부른 룰라… 미국·브라질 ‘기싸움’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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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보우소나루, 부당한 시스템으로부터 끔찍한 처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조선일보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조선일보DB


상호 관세를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79) 미국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80) 브라질 대통령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가 좌파 성향인 룰라의 정적(政敵)이자 ‘사법 리스크’에 직면해 있는 우파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70)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혹독한 상호 관세를 예고하자, 룰라는 경멸적인 용어까지 써가며 트럼프를 깎아내렸다.

각각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대국’들 사이에서 감정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양상이다.

◇포문 연 트럼프, “보우소나루 마녀사냥 끝내야”

포문은 트럼프가 열었다. 트럼프는 지난 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브라질에 8월 1일부터 50%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소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마녀사냥과 재판을 끝내라”고 압박했다. 이는 지난 4월 발표 당시(10%)보다 다섯 배나 오른 수치였다. 특히 트럼프가 다른 나라의 정치·재판 상황까지 거론하며 현 브라질 정부의 사법 처리 절차를 ‘마녀사냥’에 빗대 비난하자 내정간섭 논란까지 일었다.

2019년 3월 백악관을 방문한 당시 자이르 보우소나루(왼쪽) 브라질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선물하고 있다. /백악관 자료사진

2019년 3월 백악관을 방문한 당시 자이르 보우소나루(왼쪽) 브라질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선물하고 있다. /백악관 자료사진


강경 우파 성향인 보우소나루는 트럼프가 직접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했을 정도로 동질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반중, 반이민 정책 등 정치 노선뿐 아니라, 지난 2022년 10월 대선에서 보우소나루가 패배하자 선거에 불복하고 지지자들을 대통령궁과 의회 등에 난입하도록 선동하는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것도 트럼프 상황과 비슷하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내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10배 더 심하게. 보우소나루에 대한 마녀사냥을 면밀히 지켜보겠다”고 적은 바 있다.

사실 지난해 미국과 브라질 간 무역 규모는 약 920억달러로, 미국이 74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브라질 입장에서는 관세 인상 이유가 무역 불균형보다는 보우소나루 재판 관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파 성향 트럼프가 좌파 성향 룰라를 곤란하게 만들어 룰라 정부를 흔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룰라는 1.8%포인트 차로 보우소나루를 누르고 당선됐다. 룰라는 퇴임 12년 만에 복귀해 브라질 사상 첫 3선(選) 대통령이 됐으나, 최근 물가 상승 등 경제난을 겪으며 지지율이 하락해 입지가 좁아진 상황이다. 브라질이 점차 만성적인 ‘정치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는 부분도 룰라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29일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모습. /EPA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모습. /EPA 연합뉴스


◇룰라의 맞불 “그링고는 브라질 대통령에게 명령 내릴 수 없어”

트럼프가 보우소나루의 상황까지 언급하며 파상공세를 펼치자 룰라는 관세 부과 예고 방식뿐만 아니라 트럼프까지 강하게 비판하면서 맞대응에 나섰다.

룰라는 지난 17일 공개된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대해 저는 처음엔 사실이 아니고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 (관세 예고 방식에) 매우 불쾌했다”며 “(트럼프가) 세계의 황제가 되기 위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건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이보다 앞서 룰라는 지난 7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같은 거대 국가의 대통령이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를 겁박하는 건 매우 잘못된 일”이라며 “우리는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고 비슷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룰라는 또 인터뷰에서 보우소나루에 관한 트럼프의 언급에 대해선 “트럼프의 위협은 프로토콜(외교규약)을 벗어났으며, 제 전임자의 운명이 무역 협상의 대상으로 여겨져선 안 된다”면서 “브라질 사법부는 독립적이어서 대통령이 (법원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보우소나루는) 개인 차원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관세 예고를 “아직 위기로 보진 않는다”면서 양국 정상 간 대화를 통한 합의를 촉구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AFP 연합뉴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AFP 연합뉴스


여기까진 브라질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로 여겨졌으나 룰라가 같은 날 고이아니아주(州)에서 진행된 현지 대학생과의 만남 행사에서 연설을 통해 “‘그링고’는 브라질 대통령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 G1이 보도하며 파장이 커졌다. ‘그링고’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권에서 대체로 영어권 외국인을 지칭한다. 현재는 ‘외국인’을 통칭하는 경우도 있으나 주로 ‘양키’처럼 미국인을 비하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같은 룰라의 발언은 트럼프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보우소나루에 서한...브라질 대법원은 전자발찌 부착 명령

트럼프는 지난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보우소나루를 수신자로 적시한 서한 이미지를 올렸다. 해당 서한에서 트럼프는 “나는 당신을 적대하는 부당한 시스템으로부터 당신이 받는 끔찍한 처우를 보아왔다. (이 재판은) 즉시 끝나야 한다”며 “브라질 정부가 정적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검열 제도를 종식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썼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8일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보도자료를 내 “알레샨드리 지모라이스 대법관이 국가 주권 훼손, 재판 중 강요, 수사 방해 등 혐의를 받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해 경찰 신청과 검찰 청구 내용을 심리한 뒤 임시 조처를 내렸다”며 보우소나루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브라질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 가면을 쓴 채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 예고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18일 브라질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 가면을 쓴 채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 예고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가택연금(월~금요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및 주말·휴일 24시간), 전자발찌 착용,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외국 대사 및 외국 정부 관계자 접촉 금지, 외국 대사관·총영사관 건물 접근 금지 등을 조처 내용으로 명시했다.

이와 관련 보우소나루는 현지 언론 등을 통해 “굴욕적 처사”라며 “미국은 브라질의 모범이지만 브라질은 미국의 모범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링고(Gringo)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권에서 영어권 외국인을 지칭하는 단어. ‘외국인’이라는 통칭보다는 주로 미국인을 경멸적으로 부를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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