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유독 말에 대한 비유가 많다. 선거에 나서려면 출마 선언부터 한다. 옛적엔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갔으니, 전쟁과 선거는 닮은 구석이 많다. 선거가 시작되면 강력한 대항마에 고전하거나, 숨어 있던 다크호스의 추격을 받기도 한다. 경마식 보도에 시달리거나, 끝내 낙마하는 후보도 있다. 선거가 끝나면 한동안 관직 임명을 둘러싼 하마평이 무성하다. 모두 말과 관련된 정치 용어들이다.
하마평이 돌지 않던 인물을 전격적으로 발탁하는 게 깜짝 인사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즐겼다. 당사자에게 통보하면서 부인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했다. 철통 보안이 깨져 이름이 새어나가면 여지없이 인사를 백지화했다. 잘되면 깜짝 인사만 한 게 없다. 예기치 않게 선택된 사람은 견마지로를 다하게 마련이다. 인사권자는 용인술을 인정받고, 지지율도 치솟는다. 반대로, 결과가 나쁘면 인사권자가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게 된다.
깜짝 인사는 긍정적 의미로도 사용하지만, 때론 부정적 반응도 낳는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 그랬다. 대변인이 무슨 의례라도 치르듯 기자들 앞에서 밀봉된 봉투를 뜯었다. 인선 배경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그저 낭독만 했다. 그 이유가 탄핵당한 이후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비선 측근이 인사를 주도했으니 공식 라인도 인선 과정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밀봉 인사’가 ‘박근혜식 인사’를 대표하는 용어였다.
다시 인사청문회의 계절이다. 해당 업무에 대한 기준은 특히 엄정해야 한다. 예컨대, 국방부 장관이 병역을 기피했다면 영이 서지 않을 거다.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이 확실하다면 눈감아주기 어렵다. 갑질 논란에 휩싸인 여성가족부 장관을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낙마자가 속출했다. 전병민 정책기획수석은 3일 만에, 김상철 서울시장과 박희태 법무부 장관은 각각 7일, 10일 만에 낙마했다. 김영삼은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낙마시켰다. 이를 본 국민은 환호했다. ‘정치 9단’이 선보인 고단수 ‘낙마정치’였다. 초기 지지율이 80%대를 구가했으니, 새옹지마였다.
돌발 변수가 많은 승마에선 낙마 사고에 대비하는 게 필수다. 낙마 상황에서 무작정 말에 매달리려 하면 더욱 크게 다칠 수 있다고 한다. 억지로 버티기보다 적극적으로 떨어지라는 게 승마 고수들의 조언이다. 낙마의 기술이 승마에서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임석규 문화팀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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