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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민주화운동 노벨평화상 류샤오보<br>[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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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민주화운동 노벨평화상 류샤오보<br>[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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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3일 62세
2008년 체포되기 전 류샤오보(劉曉波, 오른쪽)와 그의 부인인 시인 류샤(劉霞, 1961- )의 모습. 류샤오보는 '08 헌장'을 제정해서 발표하기 이틀 전인 2008년 12월 8일 구속되었다. 사진/Reuters 2009

2008년 체포되기 전 류샤오보(劉曉波, 오른쪽)와 그의 부인인 시인 류샤(劉霞, 1961- )의 모습. 류샤오보는 '08 헌장'을 제정해서 발표하기 이틀 전인 2008년 12월 8일 구속되었다. 사진/Reuters 2009


2010년 12월 10일 오후 1시(현지 시각) 노르웨이 오슬로시청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장. 국왕 하랄드 5세 내외와 토르비에르 야글란 노벨위원장이 나란히 입장하면서 시상식이 시작됐다. 정작 수상자 자리는 비어 있었다. 감옥에 갇혀있는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1955~2017)는 당국의 불허로 참석하지 못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2010년 12월 11일 A1면. 수상자 류샤오보는 당국의 불허로 참석하지 못했다. 수상자가 앉을 의자는 빈 채로 놓였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2010년 12월 11일 A1면. 수상자 류샤오보는 당국의 불허로 참석하지 못했다. 수상자가 앉을 의자는 빈 채로 놓였다.


야글란 위원장이 경과보고를 했다.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중국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온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동북지방의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나 그의 구금과 시상식 불참 자체가 그에게 이 상을 주는 것이 적절했음을 입증한다. 그는 기본 인권을 주장했을 뿐이며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는 반드시 풀려나야 한다.”

수상자 없는 궐석 시상식은 나치 정권의 방해로 수상자가 참석하지 못한 1935년 이후 75년만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시상식 직후 노벨위원회를 비난했다.

“노벨위원회는 정치극을 벌이고 있다. 진실은 노벨위원회의 결정이 전 세계인 다수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일방적인 것과 거짓말은 설 땅이 없으며 냉전시대 사고는 인기가 없다.”


중국은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하는 무역 보복에도 나섰다. 중국에서 소비하는 연어 90%가 노르웨이산이었다. 연어 수입은 6년 후인 2016년 12월 재개했다.

<1989년 5월 트럭 위에 올라타고 시위하는 톈안먼 광장의 시위대. 맨 위 깃발 옆에 유니폼을 입은 경찰도 보인다. 사진/David Chen>

<1989년 5월 트럭 위에 올라타고 시위하는 톈안먼 광장의 시위대. 맨 위 깃발 옆에 유니폼을 입은 경찰도 보인다. 사진/David Chen>


류사오보는 중국 공산당 독재에 펜으로 맞선 비폭력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1955년 지린성 창춘에서 태어나 지린대와 베이징사범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 연구원이던 1989년 톈안먼(천안문)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지자 급거 귀국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다른 지식인 3명과 단식 투쟁을 벌여 ‘톈안먼의 4군자’로 불렸다. 중국의 주요 반체제 인사들 대부분이 해외 망명을 택했지만, 류샤오보는 국내에서 민주화 운동을 계속 이어갔다.

그는 이후 투옥·구금·노동교화형을 받으면서도 정치개혁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2008년 12월 중국 민주화를 촉구하는 ‘08헌장’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다시 체포됐다. ‘08헌장’은 공산당 일당 독재 폐지, 인권 보장, 사법 독립, 언론·종교·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요구했다. 그는 이듬해 11년 형을 선고 받고 투옥됐다. 아내 류샤는 2010년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소식을 전하러 남편을 면회하고 온 후 8년여간 가택연금을 당했다.


류샤오보 부음 기사. 2014년 7월 14일자 A20면.

류샤오보 부음 기사. 2014년 7월 14일자 A20면.


노벨상 수상자이면서도 노벨상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류샤오보는 2017년 7월 13일 사망했다. 랴오닝성 선양시 사법국은 “선양 중국의과대 제1부속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류샤오보가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날 숨졌다”고 발표했다.

류샤오보는 앞서 5월 말 교도소 정기 검진에서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6월 초부터 당국의 감독 아래 치료를 받아왔다. “해외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요청은 당국에 의해 묵살됐다. 아내 류샤는 남편의 1주기 사흘 전인 2018년 7월 10일 연금에서 해제되어 독일로 출국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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