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최여정의 다정한 안부]
첫 대학 강의에서 만난 반가운 제자와의 추억
[최여정의 다정한 안부]
첫 대학 강의에서 만난 반가운 제자와의 추억
일러스트=김영석 |
“교수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6년 전 수업을 들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기억하기 힘드실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새 저는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최근 영국 여행을 갔다 오게 되면서 교수님이 생각나 이렇게 안부 메일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수업은 저에게 무척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지금까지 점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에 몰입하며 배움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6년 전, 1학년을 마치면서 교수님 수업을 한 학기 더 듣고 싶어서 수강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1학년 대상 수업만 개설되어서 무척 아쉬웠었죠.
교수님께서 쉬는 시간 저에게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라는 책을 선물해 주셨는데 기억나시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 교수님께서 집필하신 책이라 더욱 놀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이번 영국 여행은 처음으로 서구권 국가에 가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여행들과 달리 어디를 갈지 고민하지 않고 무엇에 이끌리듯이 런던행 비행기를 끊게 된 것 같아요. 여행을 위한 짐을 챙기는 중 갑자기 교수님께서 선물해 주신 책의 첫 장이 생각나 고민도 하지 않고 가방에 책을 챙겨 영국으로 떠났어요.
일정이 빠듯해서 책에 나온 곳들을 전부 가진 못했지만 저에겐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여행이었어요.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온 거리를 눈에 더 담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번 여행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교수님이 생각나 안부를 여쭙고자 용기를 내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이번 기회에 이렇게 여쭙고 싶습니다. 교수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안녕! 연락 줘서 반갑고 기쁘네. 나도 물론 기억하고 있지. 무척 패셔너블해서 칭찬했던 기억이 나. 첫 시간에 지각을 하더니 학기 내내 맨 앞줄에 앉아 늘 질문하며 성실하게 수업 들었었지. 부모님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며 예쁜 책갈피 선물도 주었잖아. ‘훗날, 영국으로 떠나는 배낭에 이 책이 함께하길.’ 책을 선물하면서 써준 글귀대로 네 영국 여행 배낭에 내 책을 넣어 갔구나. 런던에 1년 정도 머무르면서 쓴 책이라 짧은 여행 일정 중에 책 속의 모든 곳을 방문하기는 어려웠을 거야. 이번 영국 여행에서 즐거웠던 기억이 많았을 텐데,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들었는지도 궁금하네.
벌써 6년이 지났다니 시간이 참 빠르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을 테고, 나 역시 열심히 일하면서 박사 논문을 마무리 지어 보려 노력하고 있어. 메일을 받고 나니, 비록 한 학기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간에 대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비록 한 학기였지만 인상 깊은 배움의 기회를 가졌고 또 영국 여행길에 내 생각이 났다니 더 보람되네.
내 수업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는 말에 ‘어서 박사 논문을 마치고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학교를 찾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앞으로 더 멋진 시간이 네 앞에 펼쳐질 테니, 늘 모든 열려 있는 기회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맞서길 바라. 또 좋은 소식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고!”
“교수님 답장 잘 받았습니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저를 기억하신다는 말씀이 기쁘네요! 저는 이제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지만, 앞으로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많은 학생들이 참 부럽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미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제가 행운아일지도 모르겠네요! 갑작스럽게 불쑥 드린 연락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반겨주시고 진심 어린 조언과 응원까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교수님의 걸음을 늘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조만간 또 좋은 소식으로 다시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6년 전, 처음 맡은 대학 강의에서 만난 한 학생이 보낸 뜻밖의 긴 메일에 마음 한편이 환해졌다. 애써 준비해 간 강의 내용이 어떤 학생의 귀에는 스쳐 지나가겠지만, 또 어떤 학생에게는 작은 깨달음의 기회가 되길 바랐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스무 살 남짓의 학생들에게 지식을 넘어 비밀 같은 삶의 선물도 알려주고 싶었다. 돌이켜보니 집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타인이 내 삶의 스승이었다고, 살다가 문득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나를 성장시킨 사람이라고.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의 진심 어린 조언이, 작은 응원 한마디의 크기가 시간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날 때가 있다. 6년 만에 받은 한 학생의 메일을 읽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는 법을 새삼 깨달았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최여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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