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경기 파주 쩜오책방에서 열린 윤비 성균관대 교수(맨 앞줄 왼쪽)의 북토크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
주말이던 지난 5일 오후, 경기 파주시 꽃아마길의 주택가 동네 서점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교하신도시라고 불리는 택지 지구의 귀퉁이 마을에 자리 잡은 쩜오책방. 주변엔 네모반듯하게 솟아오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 대신 작은 정원과 텃밭을 품은 단독주택들이 많아 하늘이 탁 트였다. 쩜오책방(대표 책방지기 이정은)은 책을 좋아하는 동네 주민 15명이 공동 출자해 운영하는 협동조합 서점이다.
이날 쩜오책방에선 정치학자 윤비 성균관대 교수의 신간 ‘위험한 국가의 위대한 민주주의’(생각정원 펴냄)의 북토크가 열렸다. 동네 주민이자 쩜오책방 조합원인 조형근 전 한림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그의 본업은 사회학자다. 2019년 정규직 교수를 그만두고 마을공동체를 일구는 데 뛰어들었다. 이곳에서 그는 ‘노마’라는 별명(조합원들은 서로를 친근한 별명으로 부른다)으로 불리는데, 사회학 자체가 노마드(nomad)의 학문 같기도 하다. 윤 교수와 조형근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40년 지기 절친 사이다.
지난 5일 경기 파주 쩜오책방에서 윤비 성균관대 교수(오른쪽)가 사회학자 조형근의 사회로 북토크를 하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
“‘위험한 국가의 위대한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책이 시의적절하게 나왔다”는 사회자 인사말에, 윤 교수는 “그런 제목은 당연히 제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고 출판사에서 지었다”고 말해 시작부터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윤 교수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두 시간이 넘게 이어질 이야기를 풀어갔다. “우리는 모두 국가의 시민으로 태어나서 국가의 시민으로 죽게 되어 있”는 까닭에 국가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윤 교수는 “국가가 처음부터 인간과 함께 있었던 거냐? 국가가 그렇게 자연스러운 건 아니었다”며 “당연하지 않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국가 없는 공동체’를 상상하기 어려운 까닭은 “국가가 과거보다 점점 더 사람들을 위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여러 자원을 잘 분배하는 걸 사람들이 경험하면서 국가의 효용에 대해 더 긍정적”이 됐기 때문이다.
최초의 국가는 기원전 3천년께에 등장했지만, 유럽 계몽주의 시대만 해도 국가는 ‘괴수’(리바이어던)에 비유될 정도로 무서운 힘을 지닌 존재였다. 국가와 신민이 ‘사회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발상의 근거였다. 리바이어던은 토머스 홉스가 쓴 주저의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 현대국가의 힘은 당시와는 비견할 수도 없을 만큼 압도적이다.
“어마어마한 물적,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괴물이 된 거죠. 다만 우리는 그 리바이어던이 해주는 서비스를 누리면서 살고, 리바이어던이 만들어낸 환경에서 태어나 살기 때문에 못 느끼는 거죠. 우리가 이 리바이어던을 잘 통제한다면 충분한 서비스를 받아가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망하는 겁니다.”
통제의 가장 중요한 방편 중 하나가 “개방적 정치 체제”, 곧 민주주의다. 윤 교수는 “민주주의는 국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실존의 문제”라며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를 누리는 나라가 더 잘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경기 파주 쩜오책방에서 열린 윤비 성균관대 교수의 북토크 참석자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
윤 교수는 ‘정치의 실패’가 낳는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엄마 찾아 삼만리’를 예로 들기도 했다. 주인공 소년 마르코가 이탈리아를 떠나 아르헨티나까지 찾아갔을 만큼 아르헨티나는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부유한 나라였지만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은 이유가 정치의 실패 때문이라며 “우리 삶의 공간은 자연이 아니라 국가가 만든 공간에 규정된다”고 했다.
윤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와 회복 탄력성을 비교적 높게 평가하면서도 몇 가지 우려를 밝혔다. 하나는 국회의원 중 율사 출신이 많아지면서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는 경향, 또 하나는 정치의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의회의 구성이 엘리트화되고 관료주의가 갈수록 득세하는 경향이다.
윤 교수는 “인류사 전체에서 민주주의가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제도로 여겨진 시기는 불과 50년도 안 됐고, 지금 세계는 다시 반민주주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의 마지막 자락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한가지에 그는 주목하며 희망을 말했다.
“한번 민주주의를 맛본 세대는 이걸 잊지 않는다는 겁니다. 민주주의가 잠식당하고 있다고 절망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기억을 가지고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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