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훈 변호사 |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공약인 주4.5일제 시행에 대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할 것은 이 제도를 법정 근로시간 단축처럼 법률을 통해 강제 시행하지는 않겠다는 언급이었다.
한국인의 장시간 근로는 공지의 사실이며 지나치게 많은 노동은 삶의 여러 영역을 축소한다. 나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저출생 문제도 장시간 노동의 영향이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어떤 속도로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숙고해서 풀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론 노동으로부터 되찾아온 시간을 우리가 과연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고민해봐야 한다. 이를 위해 이번 정부의 구상인 주 36시간 노동에서 상상력을 확장하는 것은 어떤가. 담대하게 아예 하루를 휴일로 쓰는 주4일제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매주 하루의 휴일이 새롭게 주어지면 어떤 요일에 쓸지, 행복한 상상을 해보지 않은 회사원들이 있을까. 휴일에 붙여 월·금요일에 휴일을 쓰거나 수요일에 사용해 이틀만 일하는 효과를 얻는다는 헛된 희망을 품은 적은 없는가.
이러한 급진적 상상을 실제로 구현한 회사가 있다. 시리얼을 만드는 미국 켈로그는 주32시간제가 아니라 2시간을 더 뺀 30시간만 일하는 꿈의 회사였다. 켈로그는 대공황기인 1930년대에 생산공장에서 기존 8시간 3교대제를 6시간 4교대제로 바꿔 주30시간 근로제를 도입했다(벤저민 허니컷 '8시간 vs 6시간').
하루 6시간만 일하는 삶은 노동자들을 어떻게 바꿨을까. 켈로그 노동자들은 주로 노동으로 채워졌던 일상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개인적인 취미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됐다. 처음엔 주어진 여유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당황한 적도 있지만 곧 자유로운 생활에 적응했다. 그러나 이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은 회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전시 노동력이 더 많이 필요해지자 켈로그 공장도 원래의 8시간제로 돌아가야 했다. 전쟁 후에는 정부의 압력과 함께 지역사회의 공격이 있었고 6시간제는 게으름의 산물이라는 문화적 문제제기도 제도의 후퇴에 기여했다. 주목할 점은 8시간제로의 회귀가 단순히 외부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들 역시 자발적으로 6시간 근로보다 과거의 8시간제를 선호했다.
당시 회사가 제안한 투표에서 연공서열이 높은 남성 노동자들은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은 소득을 가져가는 8시간제를 선호한 반면 대다수 여성과 서열에서 밀릴 우려가 있는 남성 노동자들이 6시간제를 지지한 사실은 흥미롭다. 사실 자유시간이 처음 주어졌을 때도 여성 근로자들이 늘어난 여가시간을 가족·친구들과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낸 반면 남성 노동자들은 동네 펍에서 음주를 하거나 TV를 보는 등 수동적인 여가활동 행태를 보였다는 점도 투표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결국 켈로그의 실험은 전후에 크게 후퇴해 명맥만 유지하다 1985년에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에게 주당 4시간의 자유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문화체육관광부가 2020년 발표한 국민 여가활동 조사는 켈로그 근로자들과 한국의 노동자들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연간 가장 많이 참여한 여가활동에서 남녀 공히 압도적 1등은 TV 시청이었다(평균 67%). 다만 여성의 경우 산책과 같은 외부활동이나 사회적 교류가 차지하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았고 반대로 남성은 음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성에 비해 6배가량 높았다(25% vs 4%).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와 상관없이 노동시간 단축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켈로그의 일부 노동자처럼 여가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면 나중엔 우리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양지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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