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나에겐 '아픈 손가락' 같은 날이다. 코인 좀 한다는 분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인 날, 이름하여 '비트코인 피자데이'다. 때는 2010년 5월 22일이다. 하필이면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의 프로그래머 라스즐러 핸예츠라는 사람이 사상 최초로 비트코인 1만개를 동원해 피자 두 판을 구매한다. '가상세계 코인으로 실물 거래가 가능할까'라는, 그야말로 단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 거래는 이후 비트코인이 실제 결제 수단으로 처음 사용된 사례로 기록된다.
여기서 잠깐. 당시 비트코인 1만개의 가치는 얼마였을까. 고작 40달러(약 5만5000원) 수준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시세(2025년 5월 22일 기준)로는 약 1조5479억원어치다. 피자 한 판에 7739억5000만원을 내고 먹은 셈이다. 핸예츠는 아마 땅을 치고 있을 게다. 거래를 취소하고, 그 코인을 지금까지 보유했다면 자산이 수억 배로 불어났을 테니까.
이날이 왜 아픈 손가락일까. 본 기자에게도 핸예츠만큼은 아니지만 코인에 얽힌 뼈아픈 기억이 있어서다. 지극히 사적인 이 코인데이를, 스스로는 '코인 멍청 데이'라 부른다. 누구나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그 아까운 기회를 날려버린 날이었으니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첫 번째 코인 멍청 데이는 2014년 6월 8일이다. 당시 매일경제신문 여행 섹션 투어월드의 1면 제목은 이랬다. 'SF 영화처럼…비트코인 들고 홍콩여행 도전.' 이 취재를 함께한 이가 요즘 '온다'라는 플랫폼 기업으로 대박을 터뜨린 오현석 대표다. 그때 오 대표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젠가는 '와, 1비트코인이나 들고 있으세요'라고 되묻는 시대가 올 거예요. 강남 아파트 소유만큼이나 부자의 상징이 비트코인이 되는 시대. 한 10개만 사 놓으세요."
코인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할 당시니 그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심지어 코인 시세라 해봐야, '1비트코인=661달러(약 70만원)' 선이었던 시절이어서 콧방귀를 뀌었는데, 세상에 시세가 무려 150배 가까이 뛰어버린 거다. 그때 1개라도 사 뒀더라면.
두 번째 '멍청 데이'는 2018년 3월께다. 뉴스 검색을 하면 줄줄이 뜨는 기사가 있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로 국내 5만개 숙소 결제 가능해진다'는 제목의 글. 또 한 번 무시를 한다. 형체도 없는 비트코인으로 호텔·펜션을 예약한다고? 코인 상용화 초기로 감을 잡고 바로 투자에 나서야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일생일대 마지막 기회였다. 당시 2000만~3000만원대를 오갔던 코인이 지금은 '억'을 찍었으니까.
그나마 위로가 되는 소식도 있다. 영국의 제임스 하우얼스의 한술 더 뜬 '멍청 스토리'다. 2013년 비트코인 8000개가 들어 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무심코 버린 그는 쓰레기 140만t이 모인 매립지 주변 어딘가에 그것이 있다고 주장하며 10여 년째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다. 영국 당국이 매립지를 폐쇄한 뒤 태양광발전소를 짓겠다고 하자 그는 아예 땅 전체를 매입하겠다고 나섰다. 쓰레기 더미 속 비트코인 8000개의 현 시세는 1조2000억원쯤 된다. 냄새를 참아가며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것보다 차라리 FOMO(홀로 소외된 감정·Fear Of Missing Out)로 괴로운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나저나 이재명 정부 들어서면서 국내 증시와 코인시장이 그야말로 '불장'이다. 지금이라도 투자에 나서야 할까. 고민은 또 시작된다. 세상은 바뀌고 이제 비트코인 1개로 2만5000원짜리 피자 6000판을 살 수 있는 시대다. 천재 과학자 뉴턴조차 쪽박을 차면서 '천체의 움직임은 알 수 있지만 사람들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고 했다는데, 코인시장 움직임을 알 턱이 있나. 오늘은 7월 8일이다. 3번째 '코인 멍청 데이'가 될 지 모를 이날을 기념하며 피자나 한 판 시켜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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