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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엔 ‘시원이’가 쌩쌩… 밭에선 드론이 “일 그만하세요”

조선일보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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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엔 ‘시원이’가 쌩쌩… 밭에선 드론이 “일 그만하세요”

서울맑음 / -3.9 °
지자체마다 기술 동원해 폭염 대응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인근 마을버스 정류장. 주민 5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서자 정류장 천장에 달린 서큘레이터(환풍기)가 ‘위잉’ 소리를 내며 바람을 내뿜었다. “아이고, 요즘같이 더운 날엔 이놈이 효자네.” 주민들이 박수를 쳤다.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인근 마을버스 정류장에 '동작 감지 서큘레이터'가 설치돼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4일 오후 서울 광진구 아차산을 찾은 시민이 생수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는 모습. /고운호·장경식 기자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인근 마을버스 정류장에 '동작 감지 서큘레이터'가 설치돼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4일 오후 서울 광진구 아차산을 찾은 시민이 생수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는 모습. /고운호·장경식 기자


이 서큘레이터는 서초구가 폭염 대응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이름은 ‘서리풀 시원이’다. 서리풀은 서초구의 옛 지명이다. 야외라 선풍기보다 멀리 바람을 쏠 수 있는 서큘레이터를 썼다. 동작 감지 센서를 달아 사람이 있을 때만 팬을 돌린다. 전기는 정류장 지붕의 태양광 패널에서 공급한다. 김재경 서초구 교통행정팀 주무관은 “지난해 13곳에 처음 설치했는데 반응이 뜨거워 올해 15곳에 추가 설치했다”며 “날이 더워 벌써부터 풀가동 중”이라고 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폭염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유난히 빨리 찾아온 더위 때문이다. 동작 감지 서큘레이터뿐 아니라 ‘폭염 순찰 드론’ ‘온도 감지 벤치’까지 갖가지 신기술도 동원한다. 담당 공무원들은 “도로에 물 뿌리는 건 이미 옛날얘기”라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30일 폭염 위기 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높였다. 작년엔 7월 21일 처음 ‘경계’ 단계를 발령했는데 올해는 3주나 빠르다. 5월 20일부터 지난 2일까지 열사병 등 온열 질환으로 숨진 사람은 5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명 많다.

예전엔 장마가 더위를 식혀줬는데 올해는 장마도 힘을 못 쓴다. 기상청은 지난 3일 제주와 남부 지방에 ‘장마 종료’ 선언을 했다. 제주는 역대 가장 빨리 장마가 끝났다. 기상청은 “중부 지방도 곧 장마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 본격적으로 불볕더위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일 오후 전남 화순군 도곡면의 한 콩밭엔 ‘폭염 순찰 드론’이 떴다. 33도 무더위 속에서 밭을 매던 할머니 2명이 하늘을 쳐다봤다. 40m 상공을 날던 드론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폭염 주의보가 발효 중입니다. 실외 활동을 자제해 주십시오.” 그제야 할머니들은 “잔소리꾼이 따로 없다”며 일손을 접고 그늘로 움직였다.


화순군은 지난달 26일부터 이 순찰 드론을 띄우고 있다. 스피커를 달아 무리하게 밭일을 하는 주민들에게 안내 방송을 내보낸다. 김필원 화순군 자연재난팀장은 “폭염특보가 발령됐는데도 나와서 일하다 쓰러지는 노인이 많다”며 “일일이 쫓아다니며 말릴 수도 없어서 드론까지 동원하게 됐다”고 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열사병 등 온열 질환에 걸린 3703명 중 529명(14.3%)이 논밭에서 일하다가 쓰러졌다. 올해도 지난달 29일 경북 봉화군에서 90대 노인이 땡볕에 밭일을 하다 쓰러져 숨졌다.

서울 성동구는 버스 정류장 162곳에 ‘스마트 냉·온열 의자’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의자에 달린 센서가 기온을 감지해 30도 이상이 되면 의자 상판의 온도를 28도로 맞춘다. 성동구 관계자는 “폭염 때는 2도만 낮춰도 충분히 시원한 느낌이 든다”며 “올해 특히 무덥다고 해 40곳에 추가로 설치했다”고 했다.

산책로 등에 ‘생수 냉장고’를 설치한 지자체도 많다. 서울 광진구는 지난 2일부터 아차산, 중랑천 등 4곳에 생수 냉장고를 돌리고 있다. 광진구 관계자는 “냉장고마다 500mL 생수 230병을 가득 채워둔다”며 “더울 땐 하루에 600병씩 나간다”고 했다.


광주광역시는 폐지 수집 노인들이 땡볕에 쓰러지는 걸 막기 위해 ‘대체 일자리’ 사업을 시작한다. 무더운 날 주민센터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거나 안전 교육을 받으면 월 20만원 수당을 준다. 광주광역시 관계자는 “무작정 나가지 말라고 하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대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폭염에 시달리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다. 경북도는 ‘가축 폭염 관리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예산 182억원을 투입해 축사에 대형 선풍기와 안개 분무 시설을 설치한다. 또 가축이 더위에 쓰러지지 않게 ‘영양제’도 지원한다.

서울시는 경로당이나 주민센터 옥상에 태양열을 반사하는 ‘차열 페인트’를 칠해 건물 온도를 낮춘다. 77곳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물안개를 분사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쿨링포그’도 168곳에서 운영한다. 한병용 서울시 재난안전실장은 “폭염은 이제 일상 재난이 됐다”며 “폭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했다.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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