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6일 대법원 판결후 법정을 나와 소감을 밝히는 박유하 교수./남강호 기자 |
“11년이나 걸리다니.” 지난 1월 서울고법 307호 법정.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법정을 나서며 씁쓸한 표정으로 한 말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선고가 끝난 직후였다. 법원은 “학문적 연구에 사용된 표현은 학계·사회의 평가 및 토론으로 검증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은 박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9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2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피해자 측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지난 2월 확정됐다.
그리고 6개월 뒤인 3일, 서울고법은 국가가 박 교수에게 형사보상금 875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형사재판에서도 무죄가 확정된 그가 소송 과정에 부담한 변호사 비용 등을 보상받게 된 것이다. 박 교수가 민형사 소송에 휘말린 지 11년 만이다.
875만원이 법정에서 감내한 11년 세월을 보상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은 박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한 2013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에는 “위안부의 불행을 낳은 것은 식민 지배, 가난, 가부장제라는 복잡한 구조였다”는 주장이 담겼다. 위안부와 관련된 기존 서술과는 결이 달랐다. 이듬해 6월, 위안부 피해자들은 “책에 쓰인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박 교수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형사 재판 1심은 “박 교수 견해에 대한 판단은 재판이 아니라 학문의 장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책 속 일부 표현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23년 10월 “책 속 표현은 학문적 주장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은 작년 4월 박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재상고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는 “위안부는 현대의 매춘과 유사하다”는 발언으로 기소됐다가, 지난 2월 대법원에서 “류 전 교수의 발언은 통념에 어긋나고 비유가 부적절하지만 추상적 의견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았다.
두 학자의 주장이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학자가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 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그간 위안부 문제는 기존의 관점과 다른 견해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팩트와 주장이 있으면 공론장에서 논쟁하고 반박하면서 풀어야 한다. 모두가 같은 목소리만 낸다면, 학문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법원은 세상의 다툼이 마지막으로 흘러드는 ‘하수구’다. 하지만 학문의 자유까지 그 속에 고여서는 안 된다. 학문의 자유를 국가기관이 법으로 단죄하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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