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가 확인한 캄보디아의 한 '사기 작업장' 전경. /국제앰네스티 |
캄보디아에서 범죄 조직들이 전기 고문 등 비인간적인 방식을 동원해 사람을 가둬둔 채 온라인 사기와 보이스피싱 등 사기 범죄를 강요하고 있다는 인권 단체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권 단체는 캄보디아 정부가 이런 범행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기 작업장 수십 곳을 방치, 묵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26일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이었습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단체는 수도 프놈펜을 포함한 캄보디아 전역에서 총 53곳의 ‘사기 작업장’을 확인했으며, 의심 시설도 45곳 파악했다.
사기 작업장은 고압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과 무장 경비원, 방범 카메라 등으로 철통 보안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안에서 노동자들은 불법 감금된 채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로맨스 스캠과 보이스피싱 등 온라인 사기를 벌이도록 강요받았다.
로이터통신이 접촉한 한 18세 태국인 생존자는 딥페이크 영상 기술로 태국 여성을 유혹해 돈을 뜯는 작업을 수행한 지 1년 만에 창문에서 뛰어내려 탈출해 극적으로 구조됐다고 한다.
◇ 고문 전용 방까지... “몸이 보라색 될 때까지 때렸다”
단체가 58명의 생존자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피해자들은 ‘취업’ 제안에 속아 캄보디아에 입국했다. 이후엔 여권을 압수당하고 감금됐으며, 사기 작업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받았다. 탈출을 시도할 경우 폭행은 물론 전기 충격 등의 고문까지 이뤄졌다. 작업장은 감옥과 유사한 형태로 설계됐으며, 내부엔 ‘다크룸’이라는 이름의 고문 전용 방도 존재했다.
마치 노예처럼 사장 지시에 따라 이곳저곳 팔려다니기도 했다. 로이터와 인터뷰한 태국인 생존자는 “2023년 프놈펜으로 인신매매돼 한 작업장에 감금됐다가, 탈출을 시도하다 걸려 다른 작업장으로 팔려갔다”고 증언했다.
앰네스티에 증언한 다른 생존자는 작업장 관리자들이 베트남인 한 명을 약 25분간 계속 폭행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몸이 보라색이 될 때까지 그냥 계속 때렸다”고 했다. 이어 “전기 충격기도 썼다”며 “그 베트남인이 비명을 지르지도, 일어서지도 못할 때까지 때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리자가 ‘베트남인을 다른 작업장이 사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걸 듣기도 했다”고 했다.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다수 포함됐다. 앰네스티가 인터뷰한 58명의 생존자 중에서도 9명이 아동이었다. 앰네스티는 “중국인 아동 한 명이 한 작업장에서 사망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했다.
캄보디아의 한 사기 작업장 창문에 쇠창살이 쳐져 있고, 담에는 철조망이 둘러진 모습. /국제앰네스티 |
◇ 코로나 팬데믹 때 급증... 중국계 범죄 조직이 카지노·호텔 개조
캄보디아에 이 같은 사기 작업장이 급증한 건 코로나 팬데믹 기간 때다. 중국계 범죄 조직들이 코로나로 손님이 없어 방치된 카지노와 호텔을 사들여 사기 작업장으로 바꾸면서다. 이때 수만 명이 감금됐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최대 10만명이 수용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 평화연구소는 캄보디아 사기 산업 규모가 연 125억달러(약 17조원)일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수준이라고 평화연구소는 짚었다.
◇ 앰네스티 “캄보디아 정부, 사기 작업장 실태 알고도 방치”
앰네스티는 캄보디아 정부가 이런 조직 범죄 상황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고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단속이 이뤄지긴 했으나 형식적이었고, 대부분 자세한 조사 없이 사건을 종료시켰다는 것이다. 앰네스티는 국가의 공모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사기 작업장 즉각 폐쇄와 철저한 수사,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요구했다.
다만 캄보디아 정부는 사기 작업장 방조 의혹을 부인했다. 펜 보나 정부 대변인은 “훈 마넷 총리가 이끄는 태스크포스를 올해 1월 구성했다”며 “보고서는 과장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캄보디아 역시 사기 산업의 피해국이며, 비난보다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앰네스티는 피해자 증언을 인용해 “경찰은 작업장에 직접 진입하지 않고 피해자만 외부에서 인계받았다”며 “구조를 요청한 뒤 들통나 상관에게 폭행을 당한 생존자도 있다”고 재반박했다.
캄보디아 정부 대변인은 이 같은 지적에는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아그네스 칼라마르 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캄보디아 정부의 묵인 아래 범죄 조직이 피해자를 속이고, 인신매매하고, 노예로 만든 뒤, 이들을 사기 사업에 동원했다는 것이 생존자들의 증언에서 드러났다”고 했다.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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